온라인 음원 플랫폼 회사의 40대 부장 A씨가 몇 달 전 ‘웃픈’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작은 A 부장의 회사가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에서 연 ‘K팝 온라인 콘서트’였다. 홍보 담당자인 A 부장은 그 공연에 대한 보도 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어떤 내용인지 알아야 적을 수 있으니 게임에 직접 들어가 보려 했다. 문제는 도무지 조작법을 모르겠더란 것이다.

삼성전자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Roblox)에 '삼성 스페이스 타이쿤'(Samsung Space Tycoon)'이라는 가상공간을 선보였다. '삼성 스페이스 타이쿤'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타이쿤) 형식을 활용해 참가자들이 우주에서 외계인 캐릭터와 삼성전자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아이템으로 즐길 수 있는 가상공간이다./삼성전자 제공

게임 캐릭터를 움직여 가상 콘서트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출입문 통과는커녕 캐릭터 옷 입히는 법도 몰라 벌거숭이 상태였다고 한다. 반면 대부분 젊은 연령대인 다른 게임 참가자들은 각자 개성 있는 옷을 자기 캐릭터에 입혀 한껏 멋을 낸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A 부장의 벌거숭이 캐릭터를 둘러싸고 낄낄대며 조롱하는 채팅을 날릴 뿐 조작법을 알려주거나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A 부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고 했다.

메타버스 플랫폼이 시·공간 제약을 넘어 모든 사람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고 팬데믹 시대를 극복할 대안 기술이라고 칭송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컴퓨터로 주로 업무를 처리해온 40대 A 부장조차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설움을 겪었는데 고령층은 어떨까 싶었다. 메타버스 세계엔 고령층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 아닌가.

메타버스 플랫폼 기술이 처음부터 ‘Z세대용’으로만 개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서비스하는 대부분의 메타버스 전용 콘텐츠에선 고령층의 접속을 위한 배려나 친절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메타버스가 팬데믹 시기에 주목받게 된 취지를 생각해보면, 이 기술은 오히려 고령층에게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 코로나 팬데믹 기간 내내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권고받은 이들이 바로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팬데믹 시대 외출이 어려워진 이들의 소통 공간으로 각광받은 기술이 정작 가장 소통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는 상황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최근 일부 사회복지관에서 노인을 위한 돌봄 정책에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을 선보이고 있긴 하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시니어 모델 패션쇼’ ‘메타버스를 활용한 노인 피부 질환 진료’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 일회성 행사에 그치거나, 노인이 주체가 돼 즐기는 방식의 콘텐츠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상용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기술이 모자라서 생긴 결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령층 스스로가 관심이 적은 이유도 있겠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들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이 아예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아마도 그런 기술과 놀이가 고령층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컸을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혼자 메타버스 게임 내에서 트로트 공연을 감상하는 서비스는 당장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생각부터 든다. 이를 위한 노인 디지털 교육과 홍보 비용, 노안에도 어지럽지 않을 화면 개발 등 많은 난관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 멋진 옷을 걸친 노인들의 캐릭터가 메타버스를 돌아다닐 기회를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한 치열한 고민이 기술 진보의 올바른 방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