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게비빔밥/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성게알 50g을 얻으려면 적어도 성게 500g을 손질해야 한다. 물질을 한 시간만큼 앉아서 칼로 가시를 헤치고 성게를 자르고 작은 숟가락으로 노란 성게알을 파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물질을 하나씩 꺼내고 바닷물에 씻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상하기 쉽기에 바다에서 나오자마자 쉴 틈 없이 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름이지만 7월이면 해녀들은 설렌다.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성게 물질이 생계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제주 어부들이 여름을 버티는 힘이 자리돔에서 나온다면, 해녀들의 힘은 성게에서 나온다. 여름에 얻는 성게는 보라성게다. 제주말로 ‘구살’이라고 한다. 가을철에는 ‘솜’이라 부르는 말똥성게를 채취한다.

마을 어장에서 성게 물질을 하는 해녀들/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제주 해녀들은 알이 꽉 찬 성게를 건지면 미역에 싸서 날로 먹었다. 잔치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내놓던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이 떨어지면 얼른 성게미역국을 끓이기도 했다. 이제 성게미역국만 아니라 성게젓, 성게초밥, 성게비빔밥을 여행객에게 내놓는다. 특히 여름에 바다에서 막 건져온 성게알을 채소와 함께 올린 비빔밥은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성게에서 꺼낸 성게알/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여행객들이 서핑을 즐기는 월정리해변에 해녀들의 성게 물질이 부산하다. 봄철에 우뭇가사리를 뜯던 자리다. 영화 ‘인어공주’의 모델이었던 우도 해녀들도 물질을 하며 성게를 찾고 있다. 제주 서쪽 귀덕 바다에도 30여 명이 넘는 해녀가 성게 물질 중이다.

성게비빔밥/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해조류를 즐겨 먹는 성게가 많이 번식하면 흰색의 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 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백화현상(白化現象)을 초래한다. 그래서 바다에서 성게를 줍는 것은 해녀의 생계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제주 바다를 찾는 어류의 서식처인 해초 숲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해양 생태계는 균형과 조절이 중요하다. 적절한 개체 수의 성게를 유지하는 것이 바다와 해녀에게 필요하다. 이를 벗어나면 해녀의 생계는 물론 해양 생태계 지속을 위협한다.

성게알을 꺼내는 해녀와 가족/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해녀가 고령화되고 감소하는 것이 제주 경제와 사회 문화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양 생태계와도 관계가 깊다. 제주에서 먹는 성게비빔밥 한 그릇에 이런 생태계 작동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