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선거와 향(香)이다. 선거는 나라 분위기를 바꾸고 향은 개인 분위기를 바꾼다. 차인(茶人)의 다실에 들어갔을 때 미리 피워놓은 침향(沈香)을 맡아보면 분노심이 아래로 내려간다. 침향만 아래로 내리는 줄 알았더니 용연향(龍涎香)도 또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상쾌하게 해준다.

서울 강남에 사는 백운 거사의 다실에 갔더니만 용연향을 구경시켜 주었다. ‘연(涎)’은 입 속의 침을 가리킨다. 용이 흘린 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용은 바다의 고래를 가리킨다. 고래 중에서도 향고래가 수심 깊은 데 사는 대왕오징어를 주로 잡아먹는다고 한다. 대왕오징어는 수심 1500m까지도 내려간다. 수놈 향고래가 발정기가 되면 잡아 먹었던 대왕오징어를 토해 내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이 향고래의 토사물이 바다에 몇 년 동안 둥둥 떠다니면서 햇빛을 받고 발효되면 이게 용연향이 된다.

백운 거사가 가지고 있는 용연향은 회색 바탕에 검은색이 점점이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1㎏에 4000만원 정도가 국제 시세란다. 손으로 만져보니까 단단한 고체인데 손가락에 힘을 주면 약간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그 향이 침향처럼 곧바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왠지 은은하게 다가온다. 은은하다는 것은 머리가 아주 상쾌해지기 시작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머리가 시원해지니까 피곤에 잠겨 있던 눈이 크게 떠지는 것 같고, 전두엽(前頭葉)에 불편하게 드리웠던 구름이 걷히는 것 같기도 하다.

향이 강하지도 않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에게 무지개 설명하기가 어렵듯이, 직접 맡아 보지 않고는 이 향을 뭐라고 표현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효과는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점이다. 오행으로 표현한다면 이 향은 수기(水氣)의 정수에 해당한다. 생명이 물에서 왔다고 한다면, 이 향은 그 물의 정기를 인간에게 선사해 주는 셈이다. 활력을 주니까 중국 황실의 궁녀들이 가장 선호했던 향이다. 궁녀들이 몸에 차고 있던 향낭(香囊)에는 용연향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용연향을 차로 끓여서 남자에게 먹이면 엄청난 강장제 효능이 있다. 자고로 돈과 권력이 있는 남자들이 나이 들면 정력제에 집착하게 되어 있다. 청나라 황제들이 용연향을 밝히니까 이를 포착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용연향을 대량으로 갖다 바치면서 그 대가로 마카오 조차(租借)를 요구했다. 눈과 귀 다음으로는 코다. 코로 맡는 냄새와 향이 기분과 취향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