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비행사들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이들 중 많은 이가 우주로 책을 가져갔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들 중 누구도 책을 한 장도 읽지 못했다는 게 더 인상적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을 사로잡은 뜻밖의 풍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구’라는 텍스트였다.

거대한 우주 속에 놓인 작고 허약한 지구를 본 순간, 많은 우주인이 아기를 처음 품에 안은 엄마처럼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느꼈다. 지구에 사는 인간 개개인이 연결된 존재이며, 모든 생명체의 비극이 지구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귀환한 우주인 중 많은 이가 환경주의자가 됐고 보편적 인류애를 강조했다.

핵전쟁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뉴스를 보기 전, 눈과 얼음의 땅 ‘툰드라’에 사는 시베리아 네네츠족의 다큐를 봤다. 온난화로 기온이 40도까지 올라 ‘동토’가 녹고, 그곳에서 출몰한 고대 바이러스가 부족의 생계 수단인 순록을 감염시킨 탓에 순록에게 백신을 맞히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모습이 몇 년에 걸쳐 이어졌다. 순록 수천 마리의 이름을 기억하고, 순록들이 피곤해할까 봐 일하지 않은 순록을 골라 썰매를 끌게 하는 네네츠족. 하지만 땅속의 얼음이 녹아 흔들리는 땅에서 사는 그들의 삶은 위태로워 보였다.

네네츠족 아이 ‘꼴랴’의 등 뒤로 펼쳐진 건 동토 속에 갇혀있던 메탄가스가 기온 상승으로 폭발하며 생긴 거대한 싱크홀과, 러시아·유럽을 잇는 가스관이었다. 다큐의 마지막, 어린 꼴랴가 입대하려고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모습을 봤다. 러시아 군인이 된 아이가 파병된 곳이 혹시 우크라이나의 전쟁터가 되진 않을까.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툰드라를 보며 고향을 떠나는 부족의 아이가 다시 우크라이나의 점령군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순록 사체가 널린 비극의 땅 툰드라와 인간 시체가 널린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모습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지구는 지금 어떤 고난의 길에 들어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