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왜 불통 공간이었고 광화문 광장은 왜 집회의 성지가 되었을까? 청와대는 광화문 광장에서 경복궁역 앞 8차선 도로를 건너고, 850m 길이 효자로를 거쳐, 경호대와 여민관 건물을 지나 넓은 정원을 통과해야 나온다. 진입 과정이 복잡할수록 보안상 뛰어나고 권위를 만드는 구조가 된다. 반면 국민들에게서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청와대는 단순 사무실이 아니라, 국빈 방문 시 나라의 얼굴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G20 회의 때 청와대 시설이 열악해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공간 구조와 기능상 이유 등으로 오래전부터 여야는 청와대에서 나오겠다고 말해왔다. 집무실 이전 후보지는 정부서울청사였다. 그러나 서울청사는 주변에 높은 건물이 많아 암살 위험이 높고, 전파 통제 시 일반인 통신망 두절 문제가 있다. 청와대냐 광화문 청사냐 두 가지 선택지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제3 선택지인 용산이 등장했다.

용산은 몽골군, 일본군 등 외국 점령군이 차지했던 오욕의 역사가 많은 땅이다. 이곳에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공간이 들어선다면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는 의미가 있다. 풍광이 넓고 좋아 국빈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추후 용산공원이 개방되면 국민들은 대통령 집무실 앞마당에서 쉬게 된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가로막는 공간이 없어지고 소통이 원활해진다. 과거 조선 한양의 중심축이 청계천이라면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축은 한강이다. 수도권이 확장된 21세기 서울의 중심부는 용산이다. 대형 공원도 들어서는 용산 지역에 상징적 공간이 옮아가는 것도 적절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용산 이전은 탐탁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광화문은 집회와 시위를 하기에 최적인 조건를 7가지 가지고 있다. 첫째, 좌우에 벽처럼 선 높은 빌딩들이 소리를 반사해서 시위 효과를 증폭한다. 둘째, 시위는 하는 사람 숫자보다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 광화문은 사방에 보는 눈이 많은 곳이다. 최소 군집으로도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다. 셋째,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화장실도 많다. 넷째, 교통 장애가 적다. 세종로는 막히면 우회해도 큰 문제가 없는 도로다. 차선을 막고 사용해도 시민의 불편함이 크지 않다. 다섯째, 청와대, 경복궁,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 동상으로 이어지는 축은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그 자리에서 하는 집회는 상징성을 띤다. 여섯째, 경복궁 뒤에 숨어있는 청와대는 제왕적 대통령, 불통의 대통령 프레임을 씌우기에 적격이다. 일곱째, 집회 군집의 방향성이 청와대를 향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하면 좌우가 건물로 막혀서 밀도 있게 사람이 모이고, 더 많이 모이면 세종로를 따라서 세로로 길게 군집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군집의 방향성은 청와대를 향해 공격하는 모양새를 갖춘다. 이러한 건축 공간적인 이유로 광화문 광장은 정치 집회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상대를 겁박하기에 최적인 공간적 조건이다. 그렇다 보니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정치의 방향은 누가 광화문 광장을 차지하느냐로 결정 났다.

대한민국에서는 공영방송이라는 전파 공간, SNS라는 인터넷 공간, 광화문 광장, 이렇게 세 공간을 장악한 세력이 정치적 힘을 가진다. 그중 오프라인 공간은 광화문 광장 하나뿐이다. 민주당에 이곳은 촛불 집회, 광우병 시위라는 두 번의 승리를 가져다준 성지이기도 하다. 광화문은 학생운동 시절부터 거리 집회와 시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홈그라운드다.

그런데 용산의 공간은 다르다. 용산에서 삼각지를 막고 시위할 경우 강북의 중요한 교통 루트가 막힌다. 잦은 시위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집무실 바로 앞 공원에서 하면 넓은 공원에 사람과 소리가 퍼져 나가고 나무가 흡음재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오가며 바라봐주는 사람이 적다.

용산 이전을 통해 광화문 광장 집회가 중심이던 정치 공간이 재구성될 수 있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집회와 시위 없이도 의회에서 치열하게 공방하는 성숙한 정치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의회 정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대신 이 도시 속에는 평화로운 일상이 넘치고 공통 추억을 만들면서 화합을 이루는 공간으로 회복시키자. 국민을 위해서 싸우는 일은 국회의사당에서 하고, 그 싸움에 국민을 끌어들이지 말자. SNS 공간을 댓글 총질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만들지 말자. 극단적 정치 양극화로 자기 밥통을 철밥통으로 만들면서 국민은 피해 보게 만드는 사람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정의의 사도나 메시아처럼 행동하는 직업 정치가와 미디어에 이용당하지 말고 그들의 진의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1번 찍은 국민과 2번 찍은 국민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정치 외에도 건축 공간, 교육, 음악, 미술, 과학 등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뭐든지 정치로만 세상을 보는 정치 깔때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정치가들의 제로 섬 게임 사고방식에서도 탈출하자. 누구의 팬덤으로 존재하지 말고 나 자신으로 서는 국민이 많아져야 이 나라가 바로 선다. 용산 이전이라는 공간의 변화가 그런 시대를 여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