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이 대통령 관저로 낙점되었다고 한다. 외교의 장으로 활용하던 공간을 갑자기 내주게 된 외교부로서는 난감할 듯하다. 다만 이런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남동 공관은 외교 시설이기는 하지만 그곳을 사용할 수 있는 이는 장관뿐이다. 장관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용도의 한정성이다. 차관 이하 간부도 외빈을 맞이할 일이 많지만 청사에서 회의하고 호텔 등 외부 장소에서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일 대사관 근무 시절 ‘이쿠라 공관(飯倉公館)’이라는 곳을 방문하곤 했다. 이곳은 외무성 청사 외부에 있는 일종의 행사용 별관이다. 본래 장기 대여 형식으로 만주국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전후(戰後) 중화민국 정부가 승계하였던 부지를 1967년 일본 정부가 회수하여 본격 외교 시설로 새롭게 조성하였다. 국빈 행사에 사용되는 ‘아카사카 이궁(離宮) 영빈관’과 함께 일본 외교를 상징하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요시다 이소야(吉田五十八)의 설계로 신축한 건물은 ‘와(和)모던’풍의 품격 있는 외양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회의, 리셉션, 오찬·만찬 등 각종 외교 활동 수행이 가능하도록 기능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보안 유지가 필요하거나 격식을 갖춘 외교 행사에 사용되며, 외무대신 외에 차관 이하 간부들도 행사 성격에 따라 이곳을 요긴하게 이용하고 있다. 부처의 장이 거주하는 공간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폭넓은 쓰임새다.

이쿠라 공관을 떠올리면서 청와대 영빈관을 비슷한 용도로 재단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비단 외교부뿐 아니라 정부 각 부처가 중요 외빈 행사용으로 사용하는 시설로 재탄생한다면 한국 외교를 상징하는 새로운 명소가 될 수도 있다. 어느 나라보다 외교가 중요한 나라라는 말에 걸맞은 현실 감각과 실용적 발상이야말로 국민이 새 정권에 거는 기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