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아버지와 하는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버지는 계속 성적이 떨어지는데도 밤새 영화와 만화를 보는 내가 못마땅했다. 나는 점점 일이 떨어지는 속에서도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서로 못마땅하면서도 모르는 척하자니 자연스레 대화가 사라져갔다.

평소에도 공통 화제가 없었기에, 분명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의 못마땅함만이 공통 화제가 될 것 같았다. 집에 단둘이 있을 때의 정적이 너무 힘들었다. 간혹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면, 나도 덩달아 헛기침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소통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려고 애썼다. 아버지도 그걸 느끼셨는지 ‘흠흠’ ‘쯥쯥’ ‘어이구’ 등등 다양한 소리를 시도하여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나도 그때마다 ‘으흠’ ‘쓰읍’ ‘흐아아’ 등등의 응용 버전으로 열심히 소리를 주고받았다. 소리만 주고받았는데도 꽤 깊은 대화가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아버지도 그걸 느끼셨는지 (평소 아버지 성격으로는) 꽤 용기가 넘치는 제안을 하셨다.

/일러스트=이철원

수험생은 밥을 잘 먹어야 한다면서, 저녁마다 설렁탕을 사주시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렇게 거의 반년간, 나는 아버지와 매일 저녁 설렁탕을 먹었다. 그 반년 동안에도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설렁탕이 나올 때까지 물을 마셨다. 그냥 한 번에 마시면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시 어색해졌다. 꽤 맛있는 물을 음미하는 것처럼, ‘크으’ ‘캬아’ ‘허어’ 같은 감탄사를 적절히 조합하고 재구성하며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는 것이 비결이었다.

설렁탕이 나오기만 하면 모든 어려움이 끝났다. 뜨거운 국물은 어색함을 물리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국물을 ‘후후’ 불기도 하고, ‘후릅’ 하면서 한 숟갈 먼저 떠먹어 보기도 하며, 숟가락질을 정신없이 하며 ‘우걱우걱’ 흡입하기도 하고, 그릇을 양손으로 들고 ‘후루룩’ 삼키며 깨끗하게 비우기까지, 디테일이 무수한 소리가 있었다. 때때로 순서를 바꿔서 ‘후루룩’으로 먼저 시작하는 파격을 선보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가 ‘후후’를 하면 아들은 ‘후루룩’을 하고, 아버지가 ‘후릅’을 하면 아들은 ‘우걱우걱’을 하면서 매일 저녁 국물의 2중창을 시연했다. 그렇게 반년 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설렁탕으로 대화했다.

20년이 흘러서 나는 마흔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설렁탕을 가장 많이 먹는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로 먹고, 술 마신 후에 허한 기분을 달래려고 먹고, 술 마신 다음 날 쓰린 속을 달래려고 먹는다. 가끔 홀로 설렁탕을 먹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20년 전에 냈던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본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 자연스럽게 간극이 생긴다. 그것은 아마도 반년간, 아버지와 설렁탕을 먹으며, 아버지의 소리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생겨난 간극일 것이다. 그 간극에서, 나는 종종 20년 전 아버지의 후후와 후루룩을 듣는다.

아버지가 알려준 방법대로 20년 내내 설렁탕을 먹는다. 양념장을 한 숟갈 떠서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국물을 진하게 만든다. 국물이 너무 뜨거우면 깍두기나 김치를 한 젓갈 국물에 넣어서 뜨거움을 식힌다. 밥을 3분의 1씩만 말아서 국물 맛이 연해지지 않게 먹는다. 이게 가장 맛있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아버지와 가장 가까워지는 맛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설렁탕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어색한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을 때 설렁탕 집으로 함께 향한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아직은 공통 화제를 만들어내기 힘든 사이일수록 뜨거운 국물이 고마워진다. 후후와 후릅과 우걱우걱과 후루룩만으로도 꽤 깊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난 좋은 사람은, 대부분 설렁탕 덕을 톡톡히 봤다. 아마 다른 이들에게도 각자의 국물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후배는 마음이 허할 때마다 소고기 뭇국을 먹는다고 한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말없이 소고기 뭇국을 끓여주셨고, 손자는 또 말없이 뜨거운 소고기 뭇국을 후후 불며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가끔 소고기 뭇국을 먹다가 후후 불면, 눈 앞에 말없이 계실 것 같아서 울컥한다고 했다.

내가 많이 힘들었던 날, 후배는 나와 마주 앉아 설렁탕을 먹어주었다. 이제 곧 나의 차례가 올 것이다. 후배가 언젠가 많이 힘든 날이 오면, 그 앞에 마주 앉아 소고기 뭇국을 먹어줄 날이 올 것이다. 소고기 뭇국 그릇에는 또 얼마나 많은 소리가, 얼마나 많은 마음의 허기가 가득 담겨 있을까. 내 마음이 벌써부터 배고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