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하느님이 누구에게나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능과 능력을 주셨다고 믿는다. 그들은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면서 코에 당신의 생기, 곧 당신의 영혼을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셨으며, 그 영혼이 세상에서 거룩히 살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달란트를 같이 주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유대인은 하느님이 나누어 주신 달란트를 찾아내어 이를 갈고닦아 그 분야에 우뚝 서서 세상을 발전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 하느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달란트, 곧 재능을 찾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중요한 점은 유대인 부모는 자녀가 무엇을 하든 가능한 한 친구와 함께하도록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로 돕는 공동체 의식을 어려서부터 키워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공부도 재능 계발도 친구와 함께하며, 졸업 후 창업도 친구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유대인은 친구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해 친구를 헌신적으로 돕는다. 이러한 서로 돕는 공동체 정신이 스타트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15세기 유대인의 윤리서 ‘오르호트 차디킴(Orchot Tzadikim)’에도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항상 동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그들의 부담과 괴로움을 덜어주며… 너는 토라를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줄 충실한 형제와 친구들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네 마음이 그들에게 온전히 진실하면, 그들은 너를 사랑할 것이고, 너의 행복을 위해 일해 줄 것이다.”(19:27)

나의 실패를 공유하고 남의 실패에서 배우는 모임 ‘퍽업나이트’ - 유대인 공동체에는 실패한 창업자가 재기할 수 있도록 세 번까지 무이자 대부를 해주는 전통이 있었다. 두 번 정도 망하면 세 번째는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고 보았기 때문. 공교롭게도,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평균 창업 횟수도 2.8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성을 강점으로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 창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이런 전통은 ‘페일콘(failcon)’이나 ‘퍽업나이트(FuckUp Nights)’ 등 대규모 모임을 통해 창업자들이 실패의 교훈을 서로 공유하는 실리콘밸리 문화와도 통한다. 사진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퍽업나이트’의 실패 경험 발표 장면. /퍽업나이트

약점 인정하고 장점을 찾아 키운다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있다.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방랑하며 살아온 유대인은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유대인들이 유달리 공동체 의식이 강한 이유이다. 특히 성공한 유대인은 가난한 동포가 자리 잡을 수 있게 기금을 조성해왔다.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어야 하며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지 않는다’는 유대 율법을 따른 것이다. 18세기부터 유대인 공동체에는 ‘무이자 대부 협회’가 있어 실패한 창업자에게 세 번까지 무이자 대부를 해주었다. 보통 두 번 정도 망하고 세 번째 창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평균 창업 횟수도 2.8회라고 한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는 이런 전통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실패란 성공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의 하나이다.

유대인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약점에 개의치 않고 강점을 찾아 키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인간 각자에게 다른 달란트(재능)를 주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약점에 개의치 않듯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다 보니 이스라엘의 벤처 창업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매년 창업 되는 스타트업이 3800개 이상으로 인구당 스타트업 비율도 세계에서 첫손에 꼽힌다. 그 결과 나스닥 상장 기업이 98개에 달해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많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인공지능(AI) 산업 점유율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자율 주행 기술도 최강국 중 하나다.

유대인이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에는 실패를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페일콘(failcon)’과 ‘퍽업나이트(FuckUp Nights)’이다. 주로 스타트업 대표들이 자신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그 실패로 배운 교훈을 공유한다.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역경이나 실패를 성공을 위한 디딤돌 또는 스프링보드라고 생각한다. 다이빙 선수가 높이 솟구치려고 점프대를 박차듯이, 실패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그래서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은 상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이라 불린다. 사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업엔 당연히 실패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도 “실패는 옵션”이라 했고, 제프 베이조스도 “실패와 혁신은 쌍둥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실패했다는 것은 도전했다는 의미이고, 도전해야만 혁신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스닥 상장기업 수, 이스라엘이 세계 3위 - 미국 나스닥 증시에 상장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먼데이닷컴’이 지난 6월 주식 거래를 시작하는 모습. 먼데이닷컴은 상장으로 5억7400만달러를 조달했으며, 당시 기업 가치는 68억 달러로 추산됐다. 이스라엘은 미국, 중국에 이어 셋째로 많은 나스닥 상장 기업을 보유한 나라다. /나스닥

“실패와 도전에서 혁신이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를 비난하면 실패를 숨기게 되고, 결국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실리콘밸리에서 실패는 끝이 아니다. 실패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다. 유대교의 3대 절기는 모두 조상들의 역경을 되새기는 기념일이다. 유대인은 조상의 역경을 기억하며, 자신들도 인생 고비마다 만나는 역경을 디딤돌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벤처기업(스타트업)은 이미 세계경제의 활력소로 떠올랐다. 벤처 투자 열풍도 거세다. 올 상반기 미국 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액은 15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총투자액 1643억달러의 91.3%에 해당하는 수치이자 이전 어느 해보다 많은 투자액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벤처기업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 올 3분기에 전 세계 벤처기업에 1582억달러가 투자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벤처기업에 돈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산업군보다 수익률이 높다. 미국의 일부 대학 기금이 대규모 벤처 투자로 연간 50% 안팎의 수익률을 올렸다.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의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 보고서를 보면, 벤처캐피털이 아닌 ‘비전통적 투자자’들인 국부펀드, 뮤추얼펀드, 연기금, 헤지펀드 등이 벤처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이들이 참여한 거래는 전체 거래액의 약 77%인 1233억달러에 달했다. ‘큰손’들이 기술 기반 스타트업(tech startup) 투자로 눈을 돌렸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벤처캐피털과 달리, 마지막 투자 단계의 큰 규모 투자를 선호하며, 경영에 깊게 관여하지 않고, 절차를 줄여 신속하게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공과 실패가 엇갈리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이스라엘 정부의 원칙은 흥미롭다. 실패한 창업자가 다시 도전할 경우, 이스라엘 정부는 첫 창업 때보다 20%나 더 많은 지원을 해준다는 사실이다.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청년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지 않는 ‘다브카(Davca)’ 문화가 창업 국가의 기반이 됐다. 다브카는 히브리어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로, 실패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 덕분에 어릴 때부터 역경을 극복하는 힘을 길러온 유대인 청년들은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교육법]

실패 두려워하게 되면 창의력까지 잃게 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교육

엘리트 정보부대 출신 벤처 경영인·저술가 인발 아리엘리. /후츠파센터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 산업을 이끄는 100인에 꼽힌 인발 아리엘리는 엘리트 정보 부대 8200에서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경영인으로, 세계를 돌며 이스라엘의 혁신과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그녀는 저서 ‘후츠파’에서 이스라엘이 혁신을 이뤄낸 원동력 중 하나로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아이들을 양육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실패를 경험해야 곤란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으며, 실패를 두려워하면 창의력까지 잃게 되므로 심지어 실패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또한 이스라엘 군대 문화의 예찬자이다. “혁신적 사고를 배운 최정예 부대 출신이라는 자부심, 사회를 이끄는 네트워킹 주역이라는 긍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배운 곳이 바로 이스라엘 군대”라고 했다.

미국 투자 회사 아크(ARK)의 슬로건은 “우리는 파괴적 혁신에만 투자합니다(We Invest Solely In Disruptive Innovation)”이다. 실제로 ‘파괴적 혁신’ 기술을 가진 회사들만 엄선한 ‘아크 혁신 상장지수펀드’는 2020년에 171%의 수익률을 거두었다. 이 회사 창립자 캐서린 우드는 테슬라에 일찍부터 투자하는 등 남다른 안목으로 투자업계에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캐서린(캐시) 우드를 ‘돈나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캐시+우드=돈나무) 그런데 이 회사가 만든 펀드 8개 중 하나가 이스라엘의 혁신적 기술에만 투자하는 ‘이스라엘 혁신 기술 상장지수펀드’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에 혁신 기업이 많다. 이 펀드는 올해에만 50%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실패에 굴복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유대인 젊은이들을 혁신적인 벤처기업가로 탄생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