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이면서 글도 잘 쓰는 사람이 있다. 쌍권총과에 속하는 인물이다. 디지털도 되고 아날로그도 된다고나 할까. 이 과에 속하는 인물로는 김환기, 천경자, 김병종이 떠오른다.

그림 그리면서 글을 쓰면 서로 상충되는 게 아닐까. 아니다. 김병종은 언젠가 필자에게 ‘밥과 반찬의 관계가 된다’고 해명한 적이 있다. 화가에게는 그림이 밥이고, 글이 반찬이다. 밥 먹을 때 반찬이 있어야지. 글도 잘 쓰면서 그림도 그리는 쪽으로 넘어간 인물도 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다. 글이 밥이었다가 그림이 반찬이 된 것이다.

밥보다 반찬 값이 훨씬 비쌀 수 있다. 지난주 인사동 무우수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는 이태호 교수의 ‘고구려를 그리다’에 가서 고구려 그림을 보고 느낀 소감이다. ‘쌍권총이 또 한 명 나타났구나!’ 중등학교 미술 시간에 그림을 못 그려서 60점만 맞았던 필자와 같은 외권총은 쌍권총을 만날 때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질투가 있다. ‘왜 나는 이런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단 말인가?’ 이태호는 평소 이야기하는 화법도 나하고는 대조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낮은 목소리로 자근자근 물고 들어가는 점진적인 개량주의 화법이다. 내성적이며 수줍은 화법? 나는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는 고성방가형 화법이다. 고성방가형이 처음에는 압도하는 듯하다가 시간이 1시간쯤 흐르면 자근자근 화법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한다.

“왜 하필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그림을 그렸습니까?” “1998년과 2006년 강서대묘의 벽화를 봤을 때 그 어떤 황홀감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그림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낀 것입니다.” 미술사가는 에너지라고 표현하지만 조선 땅 지령(地靈)의 기운을 추적하는 사람에게는 이게 ‘신기(神氣)’로 해석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엄청난 신기를 느꼈다는 말이다. 강서대묘 서쪽 천장 받침을 그린 ‘강바람 일고(산수도 1)’를 보면 구름을 묘사한 것 같은 乙자 모양이 있다. 고구려인이 평상시에 항상 느꼈던 신기를 이태호 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콘크리트 빌딩과 IT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은 신기가 퇴화되어 버렸다. 신기가 퇴화되면 어떤 문제가 있나. 우울증이 온다. 삶이 엄청나게 공허하고 의미가 없다. 삶에서 축축하고 상쾌하고 두툼한 질감을 느낄 수 없다. 먹물 글쟁이 이태호는 고구려의 원색적이고 야성적 신기를 자기 식으로 표현하였다. 낮은 목소리로 자근자근하게. 그래서 고구려 벽화가 수묵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