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볼롱, 버터, 약 1880년, 캔버스에 유채 50x61cm, 워싱턴DC, 내셔널 갤러리.

혹시 실제 버터를 써서 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먹음직한 이 버터 정물화는 프랑스 화가 앙투안 볼롱(Antoine Vollon·1833~1900)의 대표작이다. 리옹에서 판화가로 훈련받은 볼롱은 파리로 이주한 다음 본격적으로 화가 길을 걸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전에는 ‘화가들의 화가’ 소리를 들으며 대단한 인기와 명예를 누렸다. ‘춘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부터 미국 부호 헨리 클레이 프릭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사가 그의 작품을 많이 사들였기 때문에 지금도 볼롱의 작품은 공공 미술관보다는 개인 소장품으로 더 많이 남아 있다.

농장에서 가져와 지금 막 포장을 벗긴 버터 한 덩이가 동그란 달걀과 함께 식탁에 놓여있다. 버터는 유지방을 휘젓고 두드려서 만드는데, 워낙 고된 노동이라 버터 장인은 버터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볼롱은 마치 버터를 두드리듯 캔버스에 넉넉히 바른 물감을 주걱이나 손으로 뭉개고 두드려서 묵직하고도 매끄러운 버터의 질감을 실감 나게 만들어냈다. 볼롱은 이처럼 다양한 도구를 자유롭고 대담하게 사용하면서도 사실적 정물화로 명성을 얻었다.

볼롱은 처음에는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어 인물화를 못 그리고, 과일과 생선, 햄, 치즈, 버터 같은 흔한 식재료를 그렸다고 한다. 이들의 장점은 그림을 완성한 후에 먹을 수 있다는 것. 마치 그림에 손가락을 대면 부드럽게 들어가며 버터가 녹아날 것처럼 기름지고 탐스러운 화면은 결국 화가의 능력과 생활인의 식욕이 결합된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