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을 촉발한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서 제5대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의 사흘 뒤 18일 오후 서대문 자택 기자회견 모습. /조선일보DB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책상에서 제일 먼저 없앤 것이 빨간색 버튼이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비서에게 코카콜라를 찾을 때 누르던 것이다. 미국 문화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한국전쟁 때다.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유엔군 병사를 위해 유엔 한국민사지원단(UNCACK)이 코카콜라를 반입했다.

병사들을 위해 들여온 코카콜라가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만 마시고, 높은 사람에게 바치는 선물로도 쓰였다. 1950년대 권력 서열 2위인 이기붕의 사저로 보내는 귀한 선물 중 하나가 코카콜라였다.

4·19혁명 당시 성난 시민들이 ‘서대문 경무대’, 즉 이기붕의 집을 습격했을 때 두툼한 수첩을 찾았다. 언제, 누가 다녀갔고, 무엇을 두고 갔는지 꼼꼼하게 적은 일지였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안종범 경제수석의 수첩에 버금가는 스모킹건이다.

그 기록에 따르면, 1960년 초 장도영 제2군사령부 사령관이 생선을, 자유당 이동근 의원이 갈비짝을, 김성곤 의원은 이불을 놓고 갔다. 정치 깡패 임화수는 꽃을, 최재유 문교부 장관은 그림을 두고 갔다. 경제계 인사들도 줄을 이었다. 송인상 재무장관은 과일 상자, 전예용 한국은행 이사는 곶감을 보내 성의를 표시했다.

받은 물건 중에는 비단, 난초, 방석, 한지, 수박, 깨소금, 배추, 맥주, 미제 과자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눈에 띄는 것은 이기호 제일은행장이 보낸 코카콜라와 씨날코다. 씨날코는 코카콜라에 버금가는 독일의 청량음료다.

1960년 4월 19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시국선언문 발표가 유혈사태로 확대되었다. 일주일 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그 이틀 뒤 이기붕 일가가 집단 자살로 생을 마쳤다. 61년 전 어제의 일이다. 그들이 죽던 날 집에서 발견된 수첩은 권력자의 마음을 얻는 데 청량음료까지 동원되었음을 보여주는, 최빈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노숙자도 코카콜라를 마시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