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신 ‘포동춘지’(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종이에 담채, 30.2×35.5㎝, 개인 소장.

조선 후기의 중인 출신 선비 이유신이 그린 포동춘지(浦洞春池)다. 오늘날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 입구에 자리 잡은 ‘성균관’ 뒷동네인 포동의 작은 연못 일대 풍경이다. 봄이 짙어진 어느 날 8명의 선비가 꽃구경 겸 글 짓고 담소를 나누는 단출한 야외 모임을 열었다. 가운데에 앉은 푸른 옷을 걸친 선비가 모임을 주선한 것 같다. 앞에는 지필묵이 놓여 있다. 하지만 종이에 글씨는 없다. 술을 혼자 들거나 대화를 나누며 뒷짐을 지고 꽃 감상을 하는 등 선비들의 표정이나 자세는 제각각이다. 아직 개회 선언은 안 한 것이다.

사각 연못의 주변에 자라는 몇 그루의 꽃나무는 복사나무다. 줄기는 쭉쭉 뻗었고 나무껍질은 매끈하다. 한창 꽃이 곱고 싱싱하게 피는 나이 10~20년 남짓한 젊은 복사나무임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 말기에도 이 일대를 비롯한 북한산 주변은 복숭아 과수원이 많았다. 그러나 그림 속의 복사나무는 꽃을 감상할 요량으로 가지치기하지 않고 제 자람대로 그대로 둔 것이다. 가지 뻗음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다. 가지마다 분홍 꽃과 함께 새잎이 섞여 있고 색깔이 너무 옅어 거의 흰빛인 꽃도 여기저기 보인다. 진한 자주 점으로 보이는 꽃들은 아마 사용한 염료가 변색된 것 같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그림 속의 복사꽃은 활짝 핀 절정 때가 아니라 꽃이 지는 계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러 사람이 만나는 시간 약속은 정하기가 어렵다. 서로 사정에 맞추다가 결국 이렇게 꽃이 조금씩 질 때 모임이 잡힌 것이다. 한창때의 복사꽃은 너무 화사하여 꼭짓점을 살짝 지났을 때가 오히려 선비들의 정서에 맞을 수도 있다. 봄이 더욱 깊어져 꽃샘추위도 없고 간편한 차림이라도 야외 모임을 갖기에는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가로로의 굵은 띠는 성균관으로 흘러드는 반수(泮水)의 상류를 그려 넣은 것 같다.

연못 안에는 부평초로 알려진 개구리밥이 자리를 넓혀 가는 중이다. 한 선비가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모습이 특별히 눈에 띈다. 부평초처럼 세파에 이리저리 시달리는 인간사의 처지를 자기에 빗대어 되돌아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포동춘지라는 제목이 보이고 위쪽에는 ‘천원(泉源)’이란 사람이 시 한 수를 써 넣었다.

‘물 맑은 포동의 개울가/꽃향기 가득한 포동의 저녁노을/시 짓고 술 마시는 풀밭/물을 보고 꽃을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