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A. 윌슨, '침묵의 샘'(1913), 미국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소재(2018년 철거).

존 A 윌슨(John Albert Wilson·1877~1954)은 캐나다 출신으로 열아홉 살에 미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해 최고의 조각가로 성장했다. 거대한 인물상에 능했던 윌슨은 미국 전역의 공공장소에 많은 위인상을 남겼는데 그중에는 특히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들을 기린 상이 많다. 남북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공업 지역이자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북부 연방과 농업 지역이자 노예제를 옹호했던 남부 연합으로 갈라져 사상자 수가 무려 100만에 달할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던 내전으로, 미국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윌슨이 필라델피아에는 북군의 상을 세우고,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남군의 상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뛰어난 조각가였다고 해도 한 사람이 그토록 맹렬하게 싸웠던 양측의 기념 동상을 모두 만들었다니, 미국 대중이 어지간히 편견이 없었거나, 아니면 그가 오히려 캐나다인이라서 중립적이었던가 보다.

윌슨의 조각 중 가장 유명한 건 ‘침묵의 샘(Silent Sam)’. 1913년에 남부연합기념사업회에서 채플힐시(市)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 남군으로 참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1000여 명의 학생을 추모하기 위해 기금을 모아 세운 동상이다. 원제는 ‘연합군기념상’이었지만, 그가 총을 들었으되 총탄이 없다고 해서 언제부턴가 ‘침묵의 샘’이라고 불려왔다. 건립 당시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이 상은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나며 문제시되기 시작하다 마침내 지난 2018년,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군중 손에 강제 철거됐다. 조각이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없지만, 미국의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