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예르와 피에르송, 카밀로 디 카부르의 초상, 1861년, 알부민 프린트, 로잔, 엘리제 사진 미술관 소장.

피에르 피에르송(Pierre Louis Pierson·1822~1913)과 레오폴 마예르(Léopold Ernest Mayer·1817~1865)는 1855년부터 함께 파리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최신 발명품인 사진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초상 사진을 도맡아 찍으며 ‘황제의 사진가’로 인정을 받았으니, 고관대작들이 앞 다투어 밀려든 것. 이탈리아 귀족이던 카밀로 디 카부르도 그중 하나였지만, 이 사진이 곧 사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송사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1862년, 경쟁 스튜디오에서 같은 사진에 덧칠해 배경을 바꾸고 다리 위치만 살짝 바꿔 판매하자, 마예르와 피에르송은 저작권법 위반으로 경쟁사를 고소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도 사진이 개인의 독창적 창작물로서 예술 작품이라는 데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사진 저작권에 가장 거세게 반발한 건 초상화를 두고서 카메라와 사활 건 경쟁을 해야 했던 화가들이었다. 경쟁사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사진은 예술이 아니니 저작권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탄원서를 받아 법정에 제출했다. 평론가 샤를 보들레르는 사진이란 단지 ‘예술과 과학의 시녀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당대 최고 화가였던 앵그르는 ‘사진에 반대하는 미술가들의 연대’를 만들었다. 피에르송과 마예르의 변호사는 그들의 사진과 유명 회화들을 한 쌍씩 비교해 보여주며 사진의 예술성을 증명해야 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송사에서 마침내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았다. 물론 지금은 사진이 예술이라는 데 아무도 반발하지 않는다. 똑같은 카메라로 똑같은 장면을 찍더라도 예술이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