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이른바 ‘존재의 거대한 사슬(Great Chain of Being)’이라고 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계층 구도 즉 ‘스칼라 나투리(Scala Naturae)’의 맨 꼭대기에는 당연히 인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유독 우리 인간만 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기독교 신앙과 결합하며 오랫동안 서양의 사고 체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 철옹성 같았던 인간 중심 세계관도 결국 코페르니쿠스·케플러·갈릴레이의 지동설과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무너졌다. 더 이상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인간이 만물의 정점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인간 중심 사고 체계는 그리 쉽사리 물러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에 등장한 때는 지금부터 약 25만년 전인데 첫 24만년 동안에는 거의 존재감도 없었다. 그 당시 우리 인간 전부의 무게는 동물 전체 생물량(biomass)의 1% 미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1만여 년 전 농경을 시작하며 숫자가 급격히 불어나더니 이제 우리와 우리가 기르는 가축은 동물 전체 중량의 무려 96~98%를 차지한다. 이 엄청난 성공이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세상의 중심이라 믿게 만든다.

그러나 35억년 전 생명이 처음 탄생했을 때나 지금이나 이 지구의 주인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다. 그들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을 합친 수보다 100억배나 많다. 그들이 그 옛날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산소를 풍부하게 해준 덕에 우리가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자기가 세입자인 줄도 모르고 어쭙잖은 주인 행세를 하다가 코로나19 같은 대재앙을 자초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임대 계약이 300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한술 더 떠 이번 세기를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예언한다. 그런데 우리를 내보낸 뒤 집주인 미생물은 흐뭇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