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가 여름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영화와 TV 사극(史劇) 등이 우리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작 역사 교육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개항 이후 역사) 비율을 75%로 한다는 방침에 따라 학생들은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약 1870년의 역사를 총 4개 단원 중 1개 단원에서 압축적으로 배우고, 나머지 3개 단원에서 근현대사를 배우고 있다. 정사(正史)로 기록된 역사만 2000년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삼국시대와 남북국 시대, 고려와 조선시대 모두 그렇게 간략하게 배우고 지나가도 될 정도로 하찮은 역사가 아니다. 이렇게 된 것은 고대사가 현실 정치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일제시대 역사는 친일파 비판에 유용하고, 해방 이후 현대사는 민주화의 역사로 기록하든 경제개발의 역사로 서술하든 각 정권에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그 이전 역사는 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가 주로 근현대사로 채워지다 보니 요즘 대학생 중 고구려·백제·신라의 수도가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항한다면서도 고구려가 왜 우리 역사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글 창제 말고는 배운 게 거의 없는데, 일제강점기 일본 총독들의 정책은 자세하게 외우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한 전(前)근대사에 대한 비중을 확대해 역사 교육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