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네덜란드 정부가 반도체 핵심 기업 ASML이 본사 외국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화들짝 놀라 ‘베토벤 작전’을 내놨다. 25억유로(약 3조7000억원)를 투입해 ASML 본사가 있는 에인트호번 지역의 주택, 교육, 전력망을 개선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작전명에 베토벤이 붙었을까.

▶위대한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집안은 네덜란드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18세기 초 네덜란드 왕국이던 메헬런에서 제빵 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교회 악장이자 베이스 성악가로 활동했다. 베토벤 이름에 있는 판(van)은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 말로 ‘from’이란 의미다. 어원으로 보면, 베토벤 집안은 ‘사탕무 밭 사람들(bietthoffen)’이란 뜻이라고 한다. 베토벤 집안이 네덜란드 출신인데 세계인은 베토벤을 독일인으로만 안다. ‘베토벤 작전’은 네덜란드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미일까.

▶네덜란드 정부는 “베토벤과 ASML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는 기계지만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할 만한 자격이 있다. EUV 장비는 광학 기술의 집약체로, 부품 1만6000개로 구성돼 있다. 과거 장비인 DUV(심자외선)까지는 일본 캐논, 니콘이 경쟁했으나 EUV 장비는 ASML만 성공했다. 180년 역사의 독일 광학 회사 칼 자이스와 협업, 델프트 공대가 포함된 네덜란드 산학연 클러스터의 힘이 컸다.

▶ASML의 직원 2만명 중 40%가 최고급 외국인 인재다. 작년 말 네덜란드 의회가 외국인 급여 30%에 대해 5년간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을 20개월로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ASML의 최고경영자는 “혁신 인재를 데려올 수 없다면 우리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면서 본사 외국 이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2021년 네덜란드 석유 기업 로열 더치 셸이 환경 규제, 불리한 세제 등을 이유로 기업명에서 ‘로열 더치’를 빼고 영국으로 본사를 옮긴 악몽이 재현돼선 곤란했다. ‘베토벤 작전’을 급히 꾸민 배경이다.

▶ASML은 작년 말 차세대 노광 장비 ‘하이 EUV’를 새로 선보였다. 1호 시제품을 인텔에 납품했다. 한 대 가격은 5000억원. 역사상 가장 비싼 기계지만, 돈이 있다고 마음대로 살 수도 없다. ASML의 수출 금지로 중국은 구세대 장비로 반도체를 만드는데 생산 단가가 삼성전자의 100배나 된다. ‘베토벤 작전’이 한국에도 도움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