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일본에 사는 한 유튜버가 “일본에서 파는 신라면이 건더기도 더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하다”며 영상을 올려 조회 수가 600만에 달했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 신라면은 850원, 한국 신라면은 900원인데 파·버섯 같은 건더기는 일본 신라면이 훨씬 크고 푸짐해 비교가 된 것이다.

▶내수용보다 수출용이 좋다는 ‘자국민 푸대접’ 인식은 국내 소비자 사이에 오랫 동안 자리 잡아 왔다. 20년 전 미국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지인은 현지에서 현대차를 구입해 귀국 때 운반비까지 들여가며 컨테이너에 싣고 왔다. 그는 “현대차가 수출용 차량에는 훨씬 더 두껍고 튼튼한 강판을 써서 안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소비자 인식이 워낙 뿌리 깊어 현대차는 생산 공정을 영상으로 공개하면서 수출용과 내수용의 강판 두께를 다르게 만드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해명했는데 오히려 비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파격적 보증 기한 등을 약속하며 공격적 마케팅을 펴는 동안 국내 소비자들은 푸대접받는다고 여겼으니 현대차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은 것이다.

▶급기야 2015년 ‘쏘나타 30주년’ 행사장에서 깜짝 이벤트까지 열었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만든 빨간색 쏘나타와 아산 공장에서 만든 내수용 파란색 쏘나타를 마주 보게 한 뒤 시속 56㎞로 충돌시킨 것이다. 실험에 앞선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4%가 국내용과 해외용 쏘나타의 안전성이 다를 것이라고 답했다. 실험 결과, 내수용과 수출용 차의 파손 정도에 차이가 없었다.

▶기업들이 각국 소비자의 취향 따라 나라별로 제품 구성이나 가격을 달리하는 일이 종종 있다. 특파원 시절 프랑스에서 차를 샀는데, 그곳은 수동 기어에 에어컨 없는 승용차가 일반적이었다. 에어컨과 자동 변속기를 장착하고 오토매틱 도어를 다느라 거액을 더 냈다. 분명 ‘오토매틱 도어’라고 했는데 출고한 차를 받고 보니 운전석과 조수석만 자동이고 뒷좌석은 창문도 손잡이 돌려야 열리는 완전 수동식이라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한·일 신라면 비교도 해묵은 얘기다. 농심은 건더기 많은 일본 컵라면들과 경쟁하려고 일본 신라면에는 한국보다 건더기를 3g 늘리고 맛도 덜 맵게 현지화했다고 한다. 소비자가격도 원래 일본이 한국보다 비싼데,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일본서 신라면 파는 곳도 많아져 할인 판매 제품이 늘어난 결과 이렇게 역전된 사례가 나온 것이다. 세계 100여 나라에 팔린다는 신라면이 유명세를 치르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