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전경련 빌딩./뉴스1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55년간 사용한 명칭을 바꾸고 미국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변신하겠다고 어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새로 사용하게 될 이름 ‘한국경제인협회’는 1961년 설립 당시의 첫 이름이다. 1968년에 전경련으로 바꿨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생전에 유일하게 쓴 ‘감투’가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직이었다. 기업인들을 부정 축재자로 지목한 장면 내각에 이어, 1961년 집권한 군사 정권도 기업인 손보기에 나설 참이었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이병철 회장이 “기업인들을 부정 축재자로 몰아 처벌할 게 아니라 경제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일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러면서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을 모델로 기업인을 모아 경제 단체를 만들고 직접 초대 회장을 맡았다.

▶기업이 경제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하고 출발한 만큼 전경련이 한국 경제사에 남긴 발자취도 크다. 이병철 회장의 바통을 이은 2대 이정림 회장은 울산공단과 구로공단 설립 등을 건의했다. 이병철(삼성), 정주영(현대), 구자경(LG), 최종현(SK), 김우중(대우) 등 거물 기업인들이 회장을 맡아 재계 맏형 역할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77년부터 10년간 전경련을 이끌며 전성시대를 열었다.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앞장 서면서 “전경련이 아니었으면 못 해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퇴임 압력을 받자 “회원들이 뽑아준 회장이라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며 버틴 일화로도 유명하다.

▶출발부터 정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던 전경련은 정치자금 조성 등 정·경 유착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대로 기업 입장을 대변하다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적도 있다. 최종현 회장은 정부의 재벌 소유 분산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다가 대대적인 세무 조사를 받았다. 김우중 회장은 1998년부터 전경련을 맡아 의욕을 보였지만 대우그룹 몰락으로 임기를 못 채웠다. 그 이후로는 4대 그룹 출신 회장이 못 나왔다. 이 어려운 자리를 다들 고사해 극심한 ‘회장 구인난’을 겪었다. 급기야 국정 농단 주범으로 몰려 4대 그룹이 다 탈퇴하고 위상은 급락했다.

▶2011년 취임한 허창수 GS 그룹 회장이 12년간 이끌다 올 초 사임했다. 기업인 출신도 아닌 회장 직대 체제하에서 이번 개혁안이 나왔다. 첫 이름을 내걸고 새 출발하겠다는 전경련의 변신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