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뉴욕에 출장 간 사람들이 주점에서 양주를 한 병 시켰는데 잠시 후 경찰이 들이닥쳤다. “술을 잔이 아닌 병으로 시키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주점 주인이 수상하다고 신고했다 한다. 서양 주점들은 “술 한 병 내오라”고 하면 “그런 식으로 판 적이 없어 돈을 얼마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황한다. 일본 주점도 대개 잔 단위로 판다. ‘도쿠리’처럼 용기에 여러 잔 분량을 담기도 하지만 술병째 내놓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한국에선 ‘잔술’이 가난과 궁벽의 상징이었다. 시인 천상병은 시 ‘비 오는 날’에서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가 내리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오십원 훔쳐 아침 해장으로 간다’(후략)고 했다. 손민익 시인은 시 ‘잔술 한 잔’에서 ‘천 원짜리 한 장 놓고/ 또 잔술 한 잔 하시게/(중략)/ 가라면 못 갈/ 구비구비 힘든 세월의 흔적들을’이라고 했다.

▶경제가 곤두박질 칠 때마다 잔술을 찾는 발길이 는다.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그랬다. 그런데 최근 술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다시 잔술 찾는 이가 늘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잔술 찾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탑골공원 일대다. 소주 한 병에 3000원이던 몇 해 전까지 잔술은 종이컵 하나에 1000원이었다. 지난해 소주 값이 5000원으로 뛰면서 일부 음식점이 종이컵을 더 작은 스테인리스 잔으로 바꿔 잔술을 팔고 있다. 잔술도 값이 오른 것이다.

▶소주의 제조 가격은 550원~600원 정도다. 여기에 주세·교육세·부가세를 붙이고 도매상 유통 마진을 합한 것이 음식점 공급가다. 지난해 출고가가 7% 정도 올랐으니 음식점 공급가는 1400원~1600원이 된다. 그런데 음식점들은 대략 5000원을 받는다. 서울 강남의 유명 고깃집에선 소주 한 병에 9000원도 받는다. 이러니 공장 출고가는 10원 단위로 오르는데 음식점에선 1000원 단위로 오른다는 말이 나온다.

▶음식점 소주 값이 6000원으로 오를 예정이라고 한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임대료 인상 등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공급가의 4배를 받을 수 있나. 일제히 같은 값으로 올리는 것을 보면 담합 인상도 짙다. 서울의 음식 값 술값은 이미 도쿄보다 비싸다. 누가 납득하겠나. 1943년 노래 ‘빈대떡 신사’는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고 했다. 소주 한 병에 6000원이면, 잔술 마시거나 집에서 혼술 할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