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호트(cohort)는 300~600명 단위로 묶인 부대를 일컫는 고대 로마의 군사용어였다. 전우애로 뭉쳐 강한 결속감을 보였다고 한다. 오늘날엔 다양한 분야로 쓰임이 확대됐다. 1980년대 이후 출생해 컴퓨터와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Y세대’는 출생 코호트에 따른 분류인 셈이다. 코로나 감염자와 의료진을 병원 단위로 격리하는 것은 ‘코호트 격리’다. 재난을 함께 겪은 이들은 ‘재난 관련자 코호트’로 묶는다.

▶8년 전 세월호 희생 학생들은 1997년생이었다. 그 또래는 올해 25세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150여 명 희생자 중 그들 또래인 20대가 104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 청년은 소셜 미디어에 “세월호와 이태원을 모두 겪은 우리에게 공포는 일상”이라고 했다. ‘세월호-이태원 코호트’다. 아마도 20대 전체가 ‘세월호-이태원 코호트’ 세대일 수 있다. 이들의 부모 세대도 함께 재난 코호트일지 모른다.

▶학대나 폭력, 생명의 위협을 경험한 이들은 불면, 악몽, 자살충동 같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한다. 이들이 비슷한 사고를 겪으면 고통스러웠던 옛 기억을 떠올리는데, 이를 ‘트라우마 스위치’ 또는 ‘트라우마 트리거’라 한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기억을 누르고 살아온 20대에게 트라우마 스위치였다. 전문가들은 “친구와 또래가 불행을 당하는 모습을 연거푸 본 청년들이 집단적 피해의식이나 무력감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일부 교사들이 희생된 학생들이 남긴 ‘나 진짜 죽는 거야?’ 같은 문자를 제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내가 그 배 안에 있었다면‘ 같은 주제로 발표를 강요해 사회 문제가 됐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물었더니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정신적 학대라고 했다. 비슷한 행태가 이태원 참사 이후 다시 벌어지고 있다. 온갖 악플과 조롱, 가짜 뉴스, 현장 영상과 사진 유포, 정치적 악용 등으로 괴롭힌다.

▶저명한 뇌과학자인 프랜시스 젠슨 미 하버드 의대 교수는 청년의 뇌를 ‘양날의 칼’이라 부른다. 인간 뇌에서 완성되는데 가장 시간이 걸리는 부위가 이성적 판단을 관장하는 전두엽이다. 아직 젊은 청년들은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른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대신 청년의 뇌는 어른보다 회복 탄력성이 좋다. 어른은 극복하지 못하는 상처라고 해도 치료만 잘 받으면 툭툭 털고 일어난다. 가장 필요한 처방은 위로와 공감이라고 한다. ‘세월호-이태원 코호트’ 세대가 상처를 딛고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