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뭐 하시노?”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 역할을 맡은 배우 김광규가 학생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손찌검을 하면서 내뱉어 유명해진 대사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 힘들게 일해서 돈 벌어오는데, 공부 안 하고 철딱서니 없이 살 거냐고 남고생들을 마구 몰아붙이는 장면이었다. 이 대사가 취업 현장에선 취업 준비생들에게 특히 좌절감을 안겨주는 갑질 질문으로 통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성장해온 MZ 세대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 ‘대물림 사회’의 불공정에 특히 분노한다. 2년 전 한 구인 구직 업체가 조사했더니 취준생 39%가 ‘채용 과정에서 불공정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족 관계, 학벌 등 ‘직무와 관련 없는 질문을 받은 경험’을 가장 많이 꼽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공공 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 도입했다. 채용 과정에서 선입견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을 제하고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다.

▶블라인드 채용이 가져온 공정성 높이기의 긍정적 효과도 많다. 하지만 부작용도 꽤 드러났다. 자기소개서는 ‘자소설(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로 통한다. 서류 정보가 제한적이다 보니 자기소개서와 면접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어 실제보다 자신을 과장해서 적는 ‘자소설’이 널리 퍼졌다. 취업 포털이 취준생 107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60.8%가 “자소설을 작성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2019년 말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연구원을 뽑았는데 중국 국적자가 뽑혀 논란이 됐다. 원자력연구원은 ‘가’급 국가 중요 시설인데, 블라인드 채용이라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해외 유수 연구소는 박사급 지원자의 출신 학교와 지도교수 추천서, 연구 계획서 등을 필수 자료로 제출한다. 이런 상세 자료를 토대로 자질을 검증해 꼭 필요한 인재를 뽑는다. 우리는 박사급 연구원마저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서 엉뚱한 사람이 뽑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간 과학계에서는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 기관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해 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는데 정치 논리에 밀려 무산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 연구 기관에서 우수 연구자 확보를 가로막는 ‘블라인드 채용’을 우선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컬로프 교수가 창안한 ‘레몬 시장’이라는 개념이 있다. 정보가 불충분한 시장에서는 겉만 예쁘지 맛은 시어서 먹기 힘든 레몬이 팔리는 질 낮은 거래가 이뤄진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과학기술 연구 분야까지 블라인드 채용을 획일적으로 적용했던 건 ‘레몬 시장’의 오류를 초래한 대표 사례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