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유럽, 미국에는 전력 생산 기업이 전기 구매자에게 웃돈을 주고 전기를 파는 ‘마이너스(-) 전기료’ 제도가 있다. 바람이 너무 불거나 일조량이 급증해 풍력·태양광 발전량이 급속히 늘 때 주로 적용된다. 전기 공급량이 수요를 초과하면 전력 주파수가 올라가 정전 위험이 커진다. 전력거래소는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전기 요금에 마이너스 가격을 적용해 전기 공급을 줄인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초기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배럴당 -37달러)를 기록했다. 원유 저장소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던 원유 생산 기업들이 웃돈을 주고 재고를 넘겼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복지 정책 수단으로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개념을 제안했다. 저소득 근로자들에게 면세를 넘어 국가가 세금을 보태주자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대다수 선진국이 이 아이디어를 차용해 근로장려세제(EITC)를 시행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땐 마이너스 금리가 등장했다. 중앙은행이 돈을 맡기는 금융회사에 이자를 주기는커녕 보관료를 받았다. 다수 선진국은 마이너스 금리 국채를 발행했다. 일정 비율을 장기 국채에 항상 투자해야 하는 연·기금, 보험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이너스 금리 국채를 샀다.

▶마이너스 금리가 촉발한 과잉 유동성은 전 세계 집값, 주가를 끌어올렸다. 한국에서도 ‘미친 집값’ ‘전세 대란’이 나타났다. 결국 반세기 만에 인플레이션이 귀환했다.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속히 올리자 자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집값, 전셋값이 연일 추락 중이다. 전세금 대출금리가 폭등하자 무주택자들이 월셋집으로 몰리고 있다. 월세가 전세 대출금리보다 오히려 싸기 때문이다.

▶전세 수요는 격감하는데 서울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전보다 56%급증했다. 집주인들 사이에 세입자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주인은 전세 세입자에게 1335만원짜리 샤넬 핸드백을 선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인천에선 전세 세입자에게 50g 골드바 2개를 주겠다는 집주인도 등장했다.

▶집을 나가겠다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새 세입자는 구할 수 없고 목돈도 없어 궁지에 몰린 집주인들은 ‘내가 매달 이자를 줄 테니 계속 살아달라”고 역(逆)월세를 제안하고 있다. 시세가 떨어진 전세보증금 1억원당 월 30만~40만원씩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월세의 마이너스(-) 버전인 셈이다. 미국발 금리 급등이 낳은 기이한 새 풍속도다. 금리의 위력은 역시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