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갈치

갈치는 먹잇감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어류다. 크기 25㎝ 이하인 치어 시기에는 젓새우 등 동물성 플랑크톤을, 그 이상으로 자라면 주로 오징어, 새우, 게 등을 먹지만 월동기와 산란기처럼 몰려 있는 시기에는 서로 잡아먹는 공식(共食)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갈치 송곳니는 씹는 용도가 아니라 먹이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붙잡는 용도다. 갈치는 먹이를 그대로 삼킨다. 그래서 월동기 등에 잡은 큰 갈치 배에서 작은 갈치가 나온다고 한다. 낙지와 꽃게도 서로 잡아먹는 어류다. 이런 어종 양식이 쉽지 않은 이유다.

▶반면 문어와 연어는 알을 낳고 부화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고 죽는다. 암컷 문어는 짝짓기 전에는 활발하게 돌아다니지만 알을 낳으면 먹이 활동을 중단하고 굴 속에서 알 무더기를 지킨다. 이렇게 40일 정도 알 돌보기에 전념하다 새끼가 깨어날 즈음 죽음을 맞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모성애가 무엇인지 숙연해지기도 한다. 연어도 알을 낳은 후 죽을 때까지 그곳을 지킨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어미 연어의 살을 먹으며 자란다.

▶갈치가 서로 잡아먹는 습성을 갖고 있지만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다. 최근 조사에서 오징어, 고등어에 이어 인기 순위 3위에 올랐다. 우리나라 근해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온대 또는 아열대 해역에서도 살지만 서양 사람들은 갈치를 먹지 않는다. 낚시하다 잡히면 토막 내서 다른 어종의 미끼로 사용하지만 요리해 먹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이민 간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낚시하다 갈치가 잡히면 회를 떠서 먹으며 향수를 달랜다고 한다.

▶민주당에서 ‘갈치 정치’라는 말이 나와 화제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 패배 직후 주식 투자를 한 것이 알려지자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은 “지지했던 숱하게 많은 사람이 널브러져 있는데 실망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친명계 안민석 의원은 ‘제 식구 잡아먹는 갈치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내부 총질’이라는 것이다. 이에 같은 당 조응천 의원은 “전 의원이 할 말을 한 것”이라며 “전 의원이 갈치라면 안민석 의원은 완전 대왕갈치”라고 맞받아쳤다.

▶'갈치 정치’인지 아닌지는 발언 내용이 얼마나 상식에 부합하느냐가 기준일 수밖에 없다. 대선 후보가 패배 직후에, 더구나 의원직 출마를 앞두고 수억원대 주식을 산 것은 누가 보아도 이상하다.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지적한 것은 ‘갈치 정치’가 아니다. 정당에서 말을 못 하게 막는 일이야말로 ‘갈치 정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