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에서 오래된 사람 뼈가 나왔다. 네안더 계곡에서 발견된 이 뼈에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박물학자 요한 풀로트는 “선사 시대에 다른 인류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2년 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자 풀로트의 주장은 힘을 얻었다. 4만년 전 멸종한 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대인의 몸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 스웨덴 출신 스반테 페보 박사는 엊그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초 네안데르탈인은 사람보다 원숭이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됐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아래턱도 크게 튀어나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유전자(DNA) 분석과 화석 연구를 통해 복원한 네안데르탈인은 금발에 하얀 피부의 현대 유럽인과 비슷했다. 근력과 신체 능력도 우리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월등했고 도구를 사용하며 집단생활을 했다. 열등하다는 착각은 초창기 발견한 네안데르탈인이 심한 관절염을 앓아 구부정했고, 이가 다 빠져 있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페보는 2006년부터 전 세계의 네안데르탈인 뼈 샘플을 모아 PCR(유전자 증폭)과 분석을 반복했다. DNA 조각 하나를 분석하기 위해 기계를 6000번씩 돌린 끝에 2010년 30억쌍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모든 인류의 DNA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1~4% 섞여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과 중동으로 대규모 이주하면서 원주민인 네안데르탈인과 피를 섞고 자식을 낳았다는 증거였다.

▶'총, 균, 쇠’를 쓴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학살로 멸종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종족이 피를 섞었다는 페보의 연구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학살이 아니라 공존과 다툼을 반복하다가 환경에 좀 더 적합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 유적 어디에서도 대규모 학살이나 전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는 비만, 당뇨 같은 만성질환의 원인이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적게 먹고도 생존하기 위해 빠르게 지방을 축적시키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수렵과 채집을 하지 않는 현대인에게는 이런 유전자가 불행의 씨앗이다. 남성형 탈모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만든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먼 조상과 인류의 기원에 대해 연구해야 할까.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

박건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