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에 빠져 살던 대학 시절, 영화로 제작된 장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보러 극장에 갔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그를 한사코 밀쳐내야 했던 여주인공 윤주의 내면을 강수연이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파티장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강수연은 붉은 웃옷을 벗어 던지고 춤추며 미친 듯 웃었다. 연인을 떠나 여러 남자를 전전하던 윤주의 좌절을 그렇게 표현했다. 연인이 쏜 총에 최후를 맞는 순간보다 그 장면이 더 슬펐다.

▶강수연은 자타 공인 국민배우다. 연기 잘하고 인기 많은 배우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많은 이에게 삶을 함께한 배우다. 세 살에 데뷔한 강수연은 “내가 길거리 캐스팅의 원조”라고 말하곤 했다. 내 기억 속 가장 오래된 배우도 강수연이었다.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TBC 아동극 ‘소년 홍길동’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청소년 시절엔 청춘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보며 가슴 뛰었다. 20대 땐 ‘추락하는…’에, 30대 땐 사극 ‘여인천하’에 매료됐다.

▶많은 아역 스타가 받아들인 단명의 한계를 강수연은 거부했다. 물불 가리지 않는 연기로 아역의 저주를 극복하며 ‘깡수연’으로 불렸다. 스물한 살이던 1987년, 임권택 감독 영화 ‘씨받이’에서 출산 장면 하나를 4박5일 걸쳐 찍었다. “나는 이렇게 처절하게 연기한다”고 외치는 듯했다. 2년 뒤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선 “비구니 역이니 머리 깎는 것은 당연하다”며 아무렇지 않게 삭발을 단행했다. 파르스름한 민머리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싶었다. ‘고래사냥2′에선 대역 쓰자는 권유를 물리치고 원효대교에서 한강에 뛰어드는 장면을 직접 찍었다. ‘고래사냥 1′의 여주인공 이미숙만 못하다는 평가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수연 연기는 세계 영화인과 팬들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영화 제작자 이태원, 감독 임권택과 함께 세계로 나갔다. ‘씨받이’와 ‘아제 아제…’로 베네치아와 모스크바에서 잇달아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한류의 씨앗을 뿌렸다. 영화인들 가슴에 “우리도 가능하다”는 웅지를 심었다. 강수연 키즈들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제대로 못 해내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절벽 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연기한다”던 그녀가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올 연말쯤 공개될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내 최종 목표는 연기 잘하는 할머니 되는 것”이란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아쉬움 속에 그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