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저격수에게 사살당한 러시아군 소속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소장이 생전에 작전을 지휘하던 모습. 수코베츠키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망이 확인된 러시아군 최고위급 인사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주드 로 주연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는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의 전설적 저격수(sniper) 바실리 자이체프를 다룬 영화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그의 총에 나치 독일군 242명이 숨졌다. 사용한 총알이 243발이었다니 100% 가까운 명중률이다. 그는 우랄산맥 산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사냥하며 사격술을 체득했다.

▶지금까지 최고 저격 기록은 2차 대전 당시 핀란드의 저격수 시모 해위해가 세운 505명이다. 당시 소련군들은 정체 모를 이 저격수를 ‘하얀 죽음’이란 별칭으로 불렀다. 그가 설원에서 흰색 위장복을 뒤집어쓰고 활약했기 때문이다. 저격 거리 세계최고기록은 2017년 이라크에서 캐나다 특수부대 저격병이 세운 3450m다. 믿기 어렵지만, 그는 이 거리에서 이슬람국가(IS)의 중요 표적을 저격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 세계기록은 영국군 저격병이 2009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세운 2475m였다.

▶”잘 훈련된 저격수 한 명은 대대 하나를 막아낼 수 있다”고 한다. 적 지휘관 등을 사살해 공포감을 심어 주는 저격수는 현대전에서도 중요한 존재다. 이들의 모토는 ‘원 샷 원 킬(One shot, One Kill)’이다. 우리 군에도 육군 특전사 예하 특수전학교, 해병대 등에 저격수 양성 과정이 있다. 전문 저격수는 아니지만 실제 전투에서 준(準)저격수 역할을 하는 ‘샤프슈터(Sharp Shooter)’도 양성하고 있다. 국산 기술로 K14 저격 소총도 개발했다.

▶외신들이 지난 3일 러시아 중부군사령부 부사령관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소장이 우크라이나 저격수의 총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한 이래 사망한 최고위 러시아군 관계자다. 그가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다 저격당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차 대전 때 사상 최고 여성 저격수로 꼽히는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를 배출하는 등 ‘저격수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루드밀라는 2차대전 때 독일군 309명을 사살해 ‘죽음의 숙녀(Lady Death)’ 소리를 들었다.

▶이런 전통이 있는 우크라이나여서 러시아군이 키이우 등 대도시에서 본격 시가전을 벌일 경우 우크라이나 저격수들 때문에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군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과 보급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고한 우크라이나 국민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