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관광

‘발칸의 화약고’라 불렸던 세르비아가 요즘 ‘발칸의 백신 허브’가 됐다. 인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지에서 백신 맞으러 세르비아의 수도로 모여든다. 화이자, 모더나는 물론 중국 백신, 러시아 백신까지 인구의 2배쯤 되는 백신 물량을 확보해놓고 외국인에게도 무료로 접종하기 때문이다. 세르비아보다 몇 곱절 잘사는 이탈리아에서도 백신 맞으러 가겠다는 문의가 쇄도한다.

▶코로나 이전엔 러시아 부자들이 유럽으로 의료 관광을 갔다. 코로나 백신 때문에 처지가 뒤바뀌었다. 유럽 일부 국가는 러시아 정부에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월드 비지터’라는 노르웨이 여행사가 러시아행 백신 관광 상품을 내놨다. 3박 4일씩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를 맞고 돌아오는 단기 상품도 있고, 22박 23일 머물면서 여행 2일 차와 22일 차에 각각 백신 맞고 중간에는 스파와 마사지를 즐기는 장기 상품도 있다. 아예 비자 면제 ‘백신 관광’ 프로그램을 가동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14세기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유행하자 남녀 10명이 피렌체 외곽 시골 마을로 피신해 하루 하나씩 10일간 100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의 단편소설집이다. 코로나 시대의 ‘데카메론’ 성지는 아랍에미리트(UAE)다. 일본 투자 회사 소프트뱅크 임원, 영국 금융인 등 각국 부자들이 전용기 타고 두바이로 백신 맞으러 갔다. 지난 2월 캐나다 연기금 대표가 해외여행을 자제하라는 방역 수칙을 어기고 두바이로 ‘백신 관광’을 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임했다.

▶‘백신 디바이드(백신 격차)’가 심해지면서 ‘백신 새치기' ‘백신 원정 관광'은 대중의 분노를 샀다. 멕시코의 유명 TV 진행자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백신 맞은 사실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자랑했다가 미국과 멕시코 양국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스페인 국왕의 두 누나도 백신 맞으러 두바이 간 사실이 알려져 스페인에서 분노를 샀다. 하지만 몰디브, 미국 알래스카주처럼 아예 백신 접종을 상품화해 남들보다 한발 앞서 관광 산업을 부흥하려는 곳도 있다.

▶유럽연합(EU)은 올여름 ‘백신 여권’을 도입해 관광 재개를 구상 중이다. 오늘부터 호주와 뉴질랜드는 자가 격리 없이 자유 여행을 상호 허용하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을 시작했다. 백신 접종 순위 100위권 나라에 살다 보니 백신 맞으러 남의 나라 간다는 뉴스가 남의 일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