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나가는 북한 외교관의 최대 고민이 ‘자녀 동반’ 문제라고 한다. 자녀 중 한 명은 반드시 평양에 ‘인질’로 남겨둬야 하기 때문에 인사철마다 북 외무성 가정은 눈물바다가 된다. 쌍둥이도 예외가 없다. 김일성 시대만 해도 북 외교관들은 해외 근무자 전용인 남포혁명학원에 자녀를 맘 놓고 맡겼다. 그러나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는 그럴 수가 없다. 북한 첫 장애인 선수로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 출전한 림주성이 외교관 자녀라고 한다. 어릴 때 혼자 북에 남겨졌다가 중장비에 치여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한국에 정착한 북 외교관이 10명쯤 된다. ‘자녀 문제’로 탈북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영국 공사를 지낸 태영호 의원은 자서전에 “자식에게만은 소중한 자유를 찾아주자. 노예의 사슬을 끊고 꿈을 찾아주자”는 결심으로 탈북했다고 적었다. 한류와 자유를 맛본 자녀가 갑자기 한국 공관에 들어가는 바람에 부랴부랴 탈북한 외교관도 있다. 한 탈북 외교관은 “자녀가 중환자이면 데려 나올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하려고 뇌물을 주고 멀쩡한 자녀를 불치병 환자로 꾸미는 동료도 있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알던 북 공관원이 어느 날 “용량이 큰 축전지를 사줄 수 있느냐”고 부탁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들이 북에서 평양외국어학원 입시를 준비 중인데 정전이 되더라도 밤새 탁상 등을 밝히려면 큰 축전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외고쯤 되는 외국어학원을 졸업하면 외교관이나 무역 일꾼 등으로 해외 나가기가 쉽다. 돈벌이·출세 기회와 직결돼 “입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했다.

▶2018년 11월 로마에서 잠적했던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 부부가 작년 7월 한국에 망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같이 있던 딸은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당시 이탈리아 외교부는 ‘조 대사대리 잠적 직후 딸이 북송됐다’고 했다. 딸과 함께 탈출하려던 계획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망명한 조 대사대리가 우리 정부에 ‘비밀 유지’를 당부한 것은 인질이 된 딸의 안전을 걱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 대사대리와 외국어학원 동문인 태 의원은 “북이 조 대사대리 딸을 가혹하게 처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절대 권력자가 수도를 떠나는 관리의 자녀를 ‘인질’ 잡는 것은 일본 막부 같은 봉건시대 때 유습이다. 네가 나를 배반하면 가족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협박이다. 지금 어떤 문명국이 이런 만행을 하나. 조 대사대리 부부는 지금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