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처음 본 다큐멘터리는 2009년 개봉한 ‘워낭소리’였다. ‘소 턱 밑에 다는 방울 소리’라는 뜻의 이 영화는 경북 봉화 산골에서 팔십 평생 우경(牛耕)만 고집한 노인과 마흔 살 늙은 소의 우정과 작별을 그린다. 영화 볼 때 ‘노인이 앞에서만 소를 좋아하는 척하고 뒤에서 몰래 버리려는 것 아닐까’ 같은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건 다큐멘터리란 장르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 포스터./박원순을믿는사람들 공식홈페이지

2014년 개봉해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고 흥행(관객 수 480만명)을 기록했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89세 할머니가 밤에 야외 화장실을 가면 그 앞에서 손전등 들고 가만히 기다리는 98세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 노부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영화에 출연했을 거라곤 생각 안 했다. 이는 영화관서 함께 울었던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관객에게 다큐멘터리란 그런 것이다. ‘문헌, 자료, 기록’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 ‘documentaire’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 대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화’를 뜻한다. 영화 사전에 나오는 정의다. “웃자고 한 소리를 다큐로 받네”란 유행어는 사전보다 이 용어를 훨씬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어떤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우린 이 말을 쓴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다큐멘터리에도 주관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들여다볼지 정하는 것부터가 실은 그렇다. 그렇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미화하거나,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진 않았을 거란 믿음이 다큐멘터리란 장르엔 있다. 이런 노력을 알기에 관객들은 유명 배우나 극적인 스토리가 없어도 기꺼이 이 슴슴하지만 우직한 걸음에 동행한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주인공인 영화가 오는 7월 개봉 예정이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란 형식을 내세운 건 대중의 이 믿음을 이용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다이빙벨’이나 ‘나의 촛불’처럼 일방의 주장을 전할 때, ‘그대가 조국’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처럼 특정 개인을 미화하는 영화를 만들 때 교묘하게 써 온 방법이다.

박 전 시장 성폭력 피해자 대리를 맡았던 김재련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면 무책임하게 도피했던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명하는 게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최소한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의 뜻을 찾아 본 영화 사전엔 이런 경고도 함께 나온다. ‘영화의 주장이 현실을 현저히 왜곡하면 영화는 선전 영화가 된다.’ 이러다 다큐멘터리의 정의가 ‘선전 영화’로 바뀔 것 같아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