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순수 기술로 초격차 확보를!’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상북도 구미시 SK 실트론을 방문, 반도체 및 초순수(ultra pure water) 생산시설을 시찰하며 초순수 기술 고도화 추진계획 브리핑을 듣고 있다. 2023.2.1/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경북 구미시 SK실트론 내 ‘초순수(超純水) 실증 플랜트’ 사업장을 찾아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 격화로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이 블록화돼 ‘소·부·장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메시지를 낸 윤 대통령이 반도체 핵심 소재이면서도 여전히 일본에 의존 중인 초순수의 국산화 현장을 찾아 격려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른바 ‘반도체특별법’에서 국가 차원의 투자·육성 의사를 밝힌 ‘국가첨단전략기술’에는 초순수가 빠져 있다.

초순수는 말 그대로 ‘불순물 없는 가장 순수한 물’이다. 불순물이 100% 제거될 순 없고, 정확히는 ‘불순물 0%에 최대한 가까운 물’을 뜻한다. 초순수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웨이퍼를 세정할 때 쓰인다. 반도체는 섬세하기 때문에 이를 씻어내는 물에 불순물이 들어있으면 수율 등에 문제가 생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나노(10억분의 1) 단위 경쟁을 벌이며 웨이퍼 선폭이 작아질수록 고순도 초순수가 주목받는 건 이 때문이다.

초순수 시장은 사실상 ‘일본 천하’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주도로 반도체연구회를 만들어 반도체 제조 기술과 함께 초순수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구리타·노무라 등 초순수 업계를 틀어쥔 기업들은 이런 국가적 뒷받침 속에서 성장했다. 미국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국방부가 SEMATECH란 연구 기관을 지원해 반도체 및 초순수 기술을 지원했다. 반면 우리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기업의 자생(自生)이 반도체 기술을 키웠다. 촉각을 다투는 반도체 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시장 장악력을 키워갔지만 초순수만큼은 일본 선진 기술에 의존했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가 초순수 개발에 본격 돌입한 것은 환경부 과제로 선정된 재작년 6월부터다. 설계·시공은 100%, 소재·부품·장비는 70% 국산화를 목표로 SK실트론 2공장에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초순수 플랜트를 구축한 후 최종적으로 여기서 생산한 초순수를 반도체 공정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다. 그동안 국내 초순수 기업들은 제품을 만들어도 현장 적용이 어려워 성능 검증과 상용화가 어려웠는데 시행착오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현재 핵심 기술인 설계·시공은 70%까지 개발이 진척된 상태다. 추진 1년 8개월 만이다.

이런 성과에도 초순수는 작년 11월 반도체특별법으로 불리는 ‘국가첨단전략기술법’이 정한 첨단 기술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이론상 가장 깨끗한 물인 초순수 기술이 확보되면 정수(淨水) 기술을 비롯해 하수·폐수 처리 등 물 산업 전반에서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 대통령 말대로 초순수 기술이 초격차 확보의 교두보가 되려면 올 상반기로 예정된 2차 첨단전략기술 선정 때 초순수가 포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