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9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에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수도권에서 1139채에 달하는 빌라·오피스텔을 임대하던 ‘빌라왕’ 김모씨가 지난 10월 갑작스레 사망해 20~30대 세입자 수백 명이 보증금을 못 돌려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2019년 빌라 594채의 보증금을 갖고 잠적한 진모씨 사건에,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335명에 달하는 ‘세 모녀 전세 사기’에 이르기까지 잇따른 전세 사기로 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대급 전세 사기가 또 터진 것이어서 파장이 크다. 같은 사고가 거의 매년 반복되는데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진다.

김씨에게 당한 피해자들을 두고 “큰돈이 오가는 거래인데 조심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 보증금을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주인의 밀린 세금이나 숨겨진 빚은 없는지 확인한 후 거래했고, 설사 집이 경매에 부쳐지더라도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도록 확정일자도 받았다. 피해자 절반은 보증보험에도 가입했다. 이 정도면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한 셈이다.

하지만 김씨는 법망을 피해 교묘한 수법으로 세입자들을 농락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전세 계약 당시 임대인은 다른 사람이었는데, 계약 후 집이 김씨에게 팔렸다. 임대인이 전세 사기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후 김씨는 돈이 없다며 보증금 반환을 거부했고, 60억원이 넘는 종부세 체납으로 집에 압류까지 걸리면서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날릴 처지가 됐다. 심지어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마저 ‘계약 해지를 통보할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보험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보증금을 못 돌려받으면서 이사 갈 집의 계약금을 날리는가 하면, 정신적 고통에 배 속 아이를 잃은 부부도 있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피해자는 셀 수도 없다.

김씨는 불과 2년 사이 1000채 넘는 집을 샀는데, 신축 빌라가 많았다. 앞서 진씨나 세 모녀 사건도 신축 빌라가 주 타깃이었다. 신축 빌라는 거래가 없어 시세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김씨 사건 배후에 건축업자와 분양 대행사, 공인중개사까지 결탁한 전문 조직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가 몸통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경찰은 김씨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했다.

정부는 전세 사기 특별 단속을 하고 있으며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빌라 시세 제공 등 재발 방지책도 마련 중이다. 부디 이번 기회에 빌라왕과 뒤에 숨어있는 사기 조직까지 발본색원하고 엄벌에 처해주길 바란다. 다시는 전세 사기 범죄자들 때문에 청년들의 생활 터전이 파괴되고 꿈이 꺾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