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초 접견한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와 폴 울포위츠 미국기업연구소(AEI) 시니어펠로우는 미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원로들이다. 두 사람이 속한 헤리티지재단과 AEI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다.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미 전역에서 청운(靑雲)의 꿈을 품은 대학생들이 이곳에 몰린다. 인턴으로 일하며 교육받은 젊은 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착실하게 정치 커리어를 쌓거나 정부 부처 등에 진출해 보수 생태계를 건강하게 한다. 뜻있는 개인들이 이들을 후원한다.

이준석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6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6ㆍ1 재보궐선거 출구 조사 결과가 압승으로 나오자 환호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국민의힘이 6·1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지난해 재·보궐선거와 올해 대선에 이어 3연승을 거두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대선·지선·총선에서 3연패했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하지만 보수 정당이 자력으로 5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고 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 이익과 윤석열이라는 ‘손님’의 개인기가 갖는 지분이 더 크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권 교체의 화룡점정이 될 2년 뒤 총선의 성패는 얼마나 유능하고 매력적인 후보를 낼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용산과 여의도에서는 “쓸 만한 사람이 없다” “인재 풀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5년간 보수가 빈사(瀕死) 상태여서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이 무너졌고, 그 결과 야심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이 판을 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공고한 생태계가 있는 진보 진영과 달리 몇 안 되는 보수 싱크탱크들은 재정난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미국은 1960~70년대가 보수의 암흑기였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20% 포인트 이상 참패했고, 70년대에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이 하야해 도덕성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윌리엄 버클리 같은 지식인들이 보수주의 사상 전파에 힘썼고, 대학생들은 공부 모임을 조직해 보수의 내일을 토론했다. 맥주 재벌 쿠어스의 기부금 25만달러를 종잣돈으로 싱크탱크를 만들어 정책 개발에 매진한 퓰너 창립자도 이 대열에 있었다.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된,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보수의 황금시대는 이런 바탕 위에서 열렸다.

이준석 대표가 “잘나갈 때 혁신해야 한다”며 혁신위원회 구성과 함께 공천 개혁을 시사했다. 공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보수 생태계 복원이다. 문재인 정부 ‘인재’ 공급의 화수분이었던 참여연대의 개인 후원자 수는 1만3000명이 넘는다. 보수 정당이 살아남으려면 지지자나 뜻있는 큰손들로 하여금 ‘슈퍼챗’(유튜버에게 주는 후원금)이 아니라 어떻게 차세대를 위해 ‘사과나무’를 심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