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무소속 박덕흠 의원이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에게 산재 예방 대책을 물었다. 한 사장은 “사고 유형을 분석해보니 불안전한 상태와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면서 “불안전한 상태는 안전투자를 해서 바꿀 수 있고, 불안전한 행동을 하는 작업자는 세심하게 관리해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조선소 현장을 안전하게 만들고 근로자들이 안전한 행동을 하도록 관리하겠다는 답변이었다.

질의 답변하는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왼쪽)/뉴시스

그러나 이 발언으로 한 사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온종일 곤욕을 치렀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산재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불안전한 행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해 가지 못할 것”이라면서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처럼 원인을 전도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같은 당 장철민 의원도 “현대중공업에 대해 질의할 생각이 없었지만 (한 사장의) 발언에 심각한 우려가 들어 묻는다”며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없애겠다는 것을 대책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안전 전문가들은 한 사장의 발언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 전문가는 “산업 안전 분야의 대표 이론인 ‘하인리히 도미노 이론’에 부합하는 말을 한 것뿐인데 의원들이 말꼬리를 잡고 비판하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이론은 미국 산업 안전의 선구자로 불리는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1931년 자신의 책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에서 처음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원인은 ‘불안전한 상태와 작업자의 행동’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산재의 88%는 불안전 행동 때문에 발생하고, 10%는 불안전한 기계적·신체적 상태 때문에, 2%는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는 2:10:88의 법칙을 제시했다. 미국 조지아주립대 교수이자 안전보건학 권위자인 프랭크 버드가 이 이론을 수정·발전시킨 신 도미노 이론에서도 불안전한 행동은 산재의 주요 원인으로 포함된다.

이 두 가지 이론은 산업보건지도사 등 안전보건 관련 자격증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다. 안전 분야에선 기본 상식이란 뜻이다. 그런데도 한 사장은 기본 상식을 청문회에서 이야기했다가 의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고 결국 “말솜씨가 부족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국회에서 산재 청문회 정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기본적인 준비도 안 된 의원들이 무작정 기업 대표들을 세워놓고 꾸중하는 식의 청문회를 몇 번 더 연다고 해서 산재를 막을 수는 없다. 의원들이 호통 전문가가 아닌 안전 전문가 소리를 들을 정도는 돼야 청문회에서 제대로 된 산재 예방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