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제32차 한미재계회의 총회 2일차'에 참석해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공로패를 전달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 모든 직원을 품고 가족으로 맞이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내놓은 발언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더라도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이뿐 아니다. 아시아나 주채권단인 KDB산업은행 이동걸 회장도 19일 인위적인 인력 감축 우려에 못을 박았다. “고용 유지 안 하면 위약인데 위약을 하겠는가”라면서 자연 감원으로 과잉 인력을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선을 정비하고 경쟁력을 정비하면 생산성있게 일할 수 있는 구조조정도 완료된다”고 덧붙였다. 두 경영자 말만 듣자면 이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은 꽃길만 깔려 있는 밝은 미래다. 국내 1·2위 항공사가 합치면서 세계 7위권 초대형 국적 항공사가 탄생하고, 그 과정에서 누구 하나 일자리를 잃지 않는 꿈같은 시나리오다.

문제는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조 회장이 모든 직원을 품겠다고 공표한 날, 미국 최고 우량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정비와 기술 인력의 15%에 달하는 400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세계 항공산업 중심지인 미국 항공사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3만명이 넘는 직원을 내보냈다. 지난 3월 46만명에 달했던 미 항공업계 종사자는 올 4분기 37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최저 수준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직원들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현재 대한항공 직원은 1만8000여 명, 아시아나는 9000여 명 정도. 아시아나 차장급 직원은 “모든 업무가 겹치고 인력이 중복되어 있는 구조인데 어떻게 감원을 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대한항공 직원들부터 배치하고 아시아나 직원들은 생뚱맞은 부서로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KDB산업은행조차 사실 두 회사를 합칠 경우 중복되는 인원을 800~1000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조 회장은 더구나 “항공료 인상도 없을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과장급 직원은 “인력도 안 줄이고 가격도 안 올리겠다면 결국 전 직원들 처우가 나빠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양사는 코로나로 타격을 입자 임직원들 급여를 반납받고 대규모 유·무급 휴직 등을 단행해 지난 2분기 깜짝 흑자를 내기도 했다. ‘고통을 수반한 흑자'였던 셈이다. 다른 대기업 인사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면서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안착한다면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만한 일”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빅딜은 국내 항공사가 세계 정상권으로 도약하는 뜻깊은 계기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미 양사를 살리기 위해 국책은행이 쏟아부은 돈이 5조원에 육박한다. 장밋빛 약속이 흑빛 절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미리 대비 없이 이런 허망한 약속만 남발한다면 나중에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