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성수동의 뱅크시 관련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벽면의 작품들은 모두 복제품이다. /정상혁 기자

“환불해주세요.”

미술 전시 후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감상평이 속출하고 있다.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며 서울 성수동에서 지난달 개막한 논란의 전시 때문이다. 현재 미술계의 가장 뜨거운 이름 뱅크시에 대한 존경을 드러낸 ‘오마주(hommage) 전시’를 표방함에도, 원작자와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은 일종의 무단 전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티켓 환불 요청과 악평이 잇따랐다. 주최 측은 “작가가 정체를 밝히지 않고 활동하기에 연락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뱅크시는 신원 미상의 존재다. 한밤중 담벼락에 사회 풍자적 그림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는 영국 남성이라는 게 알려진 전부다. 그러나 그의 입장만은 분명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최근 잇따르는 ‘뱅크시 전시’는 작가와 협의 없이 조직됐음을 대중들이 꼭 알았으면 한다”는 안내문까지 써놨을 정도다. 팬으로 추정되는 이와의 채팅 화면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놨다. 팬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뱅크시 전시’ 간판 사진을 찍어 보내자, 뱅크시는 답한다. “웃긴다…. 이 전시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거 알지?”

뱅크시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안내문. 일련의 뱅크시 전시회가 작가의 인지나 관여없이(entirely without the artist's knowledge or involvement) 조직됐다고 적시해놨다. 사진 속 전시회 포스터에도 'FAKE'(가짜)라는 낙서가 보인다.

유명인을 앞세워 돈을 벌려는 장사꾼은 어디에나 있다. ‘뱅크시도 모르는 뱅크시 전시’가 전 세계를 배회하는 이유다. 이번 서울 전시도 월드 투어 일환이다. 이름은 거창하나 원작은 몇 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뱅크시의 그림이 들어간 LP판 커버 상품과 기념품 등이고, 대부분 판화 혹은 판화의 복제품이다. 그런데도 당초 이 전시는 ‘오리지널’을 홍보 문구로 내걸었고, 여러 의문이 제기되자 슬그머니 ‘오마주 전시’로 수정했다. 주최 측은 “오리지널이 일부 포함돼있다는 의미였다”며 “홍보 차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미술 전시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준다.

숱한 가짜 속에서, 진짜 문제는 그들이 내세운 철학 자체가 가짜라는 점이다. 주최 측은 “세계 곳곳의 뱅크시 작품을 한군데 모아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취지”라고 개최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줄곧 미술계의 허위를 폭로해온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는 밝히고 있다. “나는 내 작품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뱅크시의 또 다른 서울 전시도 연말에 예정돼 있고, 작품 수급이 어려워질수록 이런 식의 유사 전시가 늘어날 것이다. 이번 전시 일반 입장료는 무려 2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