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 라이브 초대석에 유명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씨와 함께 출연했다. 그는 스페인 알람브라 콩쿠르, 벨기에 프랭탕 콩쿠르 등 세계 최고의 기타 경연에서 무려 아홉 차례나 우승했다. 기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팬이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다. 클래식 기타를 취미로 연주해온 필자 역시 그의 열렬한 팬이다.

생방송 당일 그는 품에 기타를 안은 채 사포로 왼손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손끝 상태에 따라 연주 음색이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연주 전 상당 시간은 늘 손톱 손질에 할애한다”고 했다. 의외로 손이 작았다. 웬만한 어른 손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해 보이는 고사리손이었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자 그 손에서 놀라운 질주가 펼쳐졌다.

라디오 생방송에선 광고가 나가는 사이에 출연자들이 개인적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콩쿠르 우승 후 콘서트 표가 매진됐는지, 후원은 어디서 받는지 물었는데 “아직 표가 꽤 남았어요” “재단 후원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어요”란 답이 돌아왔다.

국내 클래식계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쏠림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팬도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 훨씬 더 많다. 만약 그가 피아니스트로 국제 콩쿠르에서 아홉 차례 우승했다면 어땠을까. 그의 공연은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인간의 손끝으로 현을 섬세하게 제어하며 수많은 화성과 선율을 동시에 뿜어내는 기타는 베토벤이 ‘작은 오케스트라’라며 경탄해 마지않았던 악기다. 하지만 국내에선 놀라운 기타 연주자가 나와도 ‘클래식의 꽃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란 인식 탓에 쉽게 조명을 받지 못한다.

지난 2일 저녁 표가 아직 남았다던 그의 공연장을 찾았다. 그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 연주를 펼쳤다. 과거 TV ‘토요명화’ 오프닝 테마 선율로 유명했던 2악장 아다지오에서 다채로운 기타 현색에 기분 좋은 소름이 올라왔다. K팝이나 피아노·바이올린 같은 악기에만 이목이 집중되는 우리 특유의 문화적 쏠림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명연주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