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괴로울 때면 지금의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빚어진 나인지 돌아보게 된다. 대체로 분노나 슬픔이 사람과 부대끼거나 일에 어려움이 생겼다거나 하는 이런저런 외부의 문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겉으론 나름의 해결을 본 것 같아도, 그로 인해 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것에 괴로움의 더 큰 까닭이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수밖에.

그렇게 시간의 실타래를 풀어 살피다 보면 유난히 굵은 매듭이 몇 군데 만져진다. 오래 마음 끓이던 일의 마무리로 묶은 매듭, 부대껴 너덜너덜해진 삶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묶어 놓은 매듭, 나를 단단하게 붙들어주는 존재로서 매듭이다. 그 매듭을 나는 오랜 시간 삶을 따라다니는 ‘결정적 순간’이라 불러본다.

그런 순간들 중 하나로 풀을 뽑은 경험을 꼽는다. 작물의 생장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나의 할머니는 쫓아내면 몰래 또 나타난다고, 잡초를 ‘도깨비풀’이라 부르셨다. 내 길이 맞는지 방황하며 대학을 휴학하던 해에도, 밤낮이 바뀐 갓난아이를 키우느라 지쳐있던 육아 초보 시절에도 농촌에 살고 계신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의 꽃무늬 인견 바지와 셔츠를 빌려 입고 햇빛가리개 모자를 쓰고 밭고랑을 다니며 ‘도깨비’와 씨름을 했다. 처음엔 ‘아이고, 힘들다’ 소리가 절로 나지만, 곧 시간의 흐름을 잊고 땅과 풀의 냄새, 풀을 뽑는 행위만 남는다. 온몸이 땀에 젖어 고개를 들어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닦아내느라 바쁘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며 내 안의 응어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 ‘레빈’이 풀베기를 통해 보여주는 ‘몰입’과 ‘자아의 해방’이 바로 그때의 감정과 같은 것임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다. 십대 후반의 내가 이 작품을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어떤 작품은 지나치게 일찍 만난 것이 후회된다. 거듭 읽는 과정을 통해 내 마음과 작품을 다시금 깊이 들여다보자니 흙냄새 나는 할머니의 품이 그리워진다. 작품도 사람도 시간의 굴곡을 견딘 후 보여주는 빛나는 매듭이 있다.

/임미다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