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허예진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 특별전’에 다녀왔다. 내 시선을 끈 것은 낡은 어람용(御覽用) 의궤 표지인 책의(冊衣) 4장이었다. ’Chinese○○○’이라는 둥근 라벨! 한자로 쓰인 우리 의궤를 중국 책으로 잘못 분류한 것이다. 이 오류로 인해 의궤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낡은 의궤 표지를 떼내고 서양 비단을 입혀 버렸다. 세월의 상흔인 것처럼, 낡고 닳아 구멍 숭숭 뚫린 원래 표지가 따로 보관됐다가 의궤와 함께 우리 품으로 돌아왔으니 천만다행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의궤의 존재를 알린 이는 당시 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던 박병선 박사다. 프랑스로 유학갈 때 의궤를 꼭 찾으라는 스승의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1975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파손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확인해 우리나라에 알렸다. 그 때문에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 자리를 잃게 됐고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도서관 출입조차 어렵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온갖 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의지는 국민의 반환 열망으로 이어졌다. 결국 프랑스 군함에 실려 간 지 145년 만인 2011년에 우리 항공기를 타고 의궤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투병 중이었던 박사는 의궤가 국민의 품에 안긴 모습을 보고 나서 6개월 뒤 프랑스에서 영면에 들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바친 의지가 국가도 지키지 못했던 문화유산을 되찾아 오는 쾌거를 이뤘다.

의궤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물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정보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다. 전시실 안에서 딸에게 의궤를 열심히 설명하는 엄마를 만났다. 박병선 선생도 하늘에서 이 광경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시진 않을까. 10년 전 반환 기념 전시에서도 이번 전시에서도, 우리가 이렇게 맘껏 편안하게 의궤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선생 덕분이다. 외규장각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선생의 기일에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을 찾아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몇 년 전 그곳에서 선생을 뵙고 왔는데, 전시의 감흥이 가시기 전에 다시 찾아가 인사드려야겠다.

최선주 동양미술사학회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