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허예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어제, 또 오늘 뉴스에서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이 넘쳐난다. 세상에 아깝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겠느냐만, 아직 채 피어나지 못한 젊고 어린 사람들의 사고 소식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안타깝고 슬프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이 이럴진대, 생때같은 자식을 마음에 묻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니. 이제는 아이들에게 이승에서 정을 주지 않고 기르겠다.”

조선의 17대 왕 효종이 딸 숙명공주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 글귀다. 효종은 슬하에 1남 7녀를 두었는데, 셋째 딸이 숙명공주였다. 그런데 숙명공주가 낳은 자식이 일찍 죽게 되었다. 효종은 딸을 위로하면서, 손주를 잃은 할아버지로서 자신의 슬픔을 다독인 것이다. 사실 효종 자신도 장녀 숙신공주를 먼저 떠나보내고 애통해 했었던 아버지였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해 영아사망률이 높던 예전, 많은 아이는 이름도 없이 죽고 잊혔다. 하지만 이른 죽음이 흔하다 한들 부모의 슬픔이 덜 하지는 않았으니. 족보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죽어간 아이들이 분명한 자취를 남긴 곳은 낳아준 부모의 마음 한가운데였다.

허난설헌은 자신의 남매를 나란히 무덤에 묻고 “밤마다 사이좋게 손잡고 놀아라”라고 시를 적었고, 이산해는 죽은 막내아들에게 “어째서 꿈속에서조차 찾아오지 않느냐?”고 슬퍼했으며, 오희문은 요절한 딸 단아를 그리워하며 “나를 두고 어디로 갔느냐”며 일기에 적었다. 정약용은 모두 9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그중 6명을 어려서 잃고 아이들의 이름과 사연을 하나하나 추억하며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잔혹하기가 이렇구나”라고 한탄했다. 아무리 살아있는 자식이 많아도 죽은 자식을 대신할 수 없었고, 옛날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어린아이의 죽음은 슬프고 애통하고 안타깝다.

슬픔이 지극한 것은 그만큼 아이가 주었던 기쁨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힘내어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자, 이 커다란 슬픔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견뎌내질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