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이 되면 한 가지 낙이 있으니, 노란 귤을 커다란 박스째로 사서 시원한 곳에 두고 틈 날 때마다 집어먹곤 한다. 하루에도 몇 개씩 까 먹다 보면 손끝이 노랗게 물들고 귤 향내가 가득한데,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이 본다면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호사라고 하겠다. 원래 귤은 아주아주 귀한 과일이었고, 먼 옛날 사람들은 평생을 걸쳐 한 번 먹어볼까 말까 했다.

/일러스트=허예진

동양에서 귤은 지극한 효의 상징이었다. 후한 말, 그러니까 삼국지의 시대. 육적이란 효자는 원술에게서 귤을 대접받았는데, 집에 계신 어머니께 드리고 싶어 소매 안에 몰래 넣어갔다. 이 일이 유명해져서 회귤유친(懷橘遺親)이라고 했으니, 수많은 사람이 이 일을 떠올리며 귤을 챙겨가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곤 했다.

반대로 귤은 사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사치와 향락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수양제가 먹고 감탄한 요리가 바로 금제옥회(金虀玉膾)였으니, 농어로 뜬 회에 귤 껍질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것이라 했다.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하니, 생선을 회처럼 얇게 떠 레몬즙에 재어 두고 먹는다는 남미 요리 ‘세비체(cebiche)’와 비슷하지 않을까. 금제옥회도 세비체도 어느 쪽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귤은 또 나름 독특한 역사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도는 귤의 고장이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고생해서 농사지은 귤을 배에 가득 실어 한양으로 보냈다. 먼 곳에서 실어온 귤은 임금이 신하들에게 내려주는 특별한 상이었고,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의 학자들은 세자였던 문종이 보낸 귤을 받고 황송해했다고 한다. 한편, 젊은 유생들은 그 귤을 상품으로 놓고 글짓기 대회를 벌였으니 이것이 바로 황감제(黃柑製)였다. 조선 후기 학자 윤기가 남긴 시문집 ‘반중잡영(泮中雜詠)’을 보면, 시험장의 선비들이 귤을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주먹 다툼을 벌이고 시험관들은 벌떼처럼 모여든 인파를 향해 귤을 마구 던져댔다고 한다. 까짓 귤 때문에 무슨 법석이냐 싶지만, 그래도 맛있으니까 이해한다, 겨울의 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