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허예진

반려묘를 시중들듯 살뜰히 돌보며 기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집사(執事)라 하더니, 어느덧 식물을 많이 기르는 사람을 ‘식집사’(식물+집사)라 부른다. 크고 작은 식물 70여 개를 키우는 나도 식집사다. 식물들이 생장하고 소멸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 사람과 비슷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람마다 식성과 취향이 다르고 극한 상황에 적응하는 내성이 다르듯 식물도 종류별로 물, 햇빛, 공기에 대한 선호 조건이 제각각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가 다른 것처럼, 함께 데려온 같은 식물을 동일한 조건에서 키워도 자람새가 사뭇 다르다.

잎 중심의 관엽식물들이 그나마 키우기 수월하다면 꽃식물들은 손이 많이 가면서 꽃망울이 터질 때까지 마음 졸이게 된다. 식물을 키우면서 제일 마음 아픈 건 열매 맺지 못하거나 꽃피지 못하고 시들어 버릴 때다. 물도 주고 빛도 쬐어주고 다 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꽃봉오리째 말라버리면 종종 겪는 일임에도 허탈함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꽃 한 송이, 식물 한 포기가 시들어도 이토록 아까운데 우리는 또 꽃처럼 곱고 귀한 젊은이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노 마스크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다 숨이 막혀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더욱 비통하다. 핼러윈을 상징하는 익살스러운 미소의 주황색 호박등은 슬픈 조등(弔燈)이 되고 말았다.

갖가지 곱디고운 사연들을 간직한 꽃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졌는데 그 꽃을 지켜주어야 했던 ‘사회의 식집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분향소 앞에서 무료로 헌화용 꽃을 나눠주는 꽃집 주인들, 영업은 하지 않지만 소방관과 경찰에게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가게 문을 연 빵집 주인,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배려가 남은 이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이태원 참사로 떠난 분들과 차마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꽃을 바친다.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