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형사 법정에 갔는데, 변호사들이 열심히 변론하고 있었다. “피고인은 혼자 병든 노모와 어린 두 딸을 돌보고 있습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맡았던 사건이 떠올랐다. 1993년, 사법시험 합격 직후 연수 받던 내게 부여된 국선 변호 사건이 하나 있었다. 빈집 문을 따고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다 발각된 A씨 사건이었다. 미수에 그친 행위였지만, A씨에게 전과가 있어 구속된 것이었다.

“제가 정말 손을 씻으려고 했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으셔서…. 위암 말기입니다.”

구치소에서 들은 그의 이야기는 소설이나 마찬가지였다. 결혼 후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아내는 불화로 자식 둘을 내버려둔 채 가출했고, 그는 노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건사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저 만약 이번에 실형(實刑) 선고받으면 어머니 간호 못 합니다. 집행유예 받게 힘 써 주세요.”

나는 A씨가 처한 상황을 최대한 부각해 판사가 정상(情狀)을 참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의 설명을 토대로 변론 요지서를 작성하고, 법정에서 “우리 사회가 이런 약자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강변했다.

결과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집행유예였기에 바로 석방이 가능했다. 나는 석방 시간을 파악한 다음 구치소에 갔다. 그런데 A씨 옆에 웬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혹시 가출했던 부인?”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집사람은 가출 안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머리가 띵했다. 그러고 보니 A씨가 더 이상 다리를 절룩거리지도 않았다. “그 다리는…?” “구속된 후 구치소에서 좀 삐끗했는데, 괜찮아졌어요.” 교통사고로 생긴 장애라더니…. “그럼 어머니 위암은?” “죄송합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꽤 됩니다.”

“딱한 사정이 있어야 더 봐주거든요. 원래 이 바닥이 그래요. 사법연수원생 같으신데, 앞으로 훌륭한 법조인이 되실 겁니다.”

A씨는 이 말을 남기고 아내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나갔다. 나는 한참이나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재판에선 이겼지만, 그것만으로 능사가 아니었다. 너무나 절절한 스토리텔링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기 어려움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준 초년 변호사 시절의 웃지 못할 경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