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1946년에 독일에서 출판되어 현지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한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서당을 그만두고 신식 학교에 다니는 동생에게 거기서는 무얼 배우는지 누나가 묻는다. 천문·지리·과학·기술 등을 배운다고 대답하자 누나의 반응이 핵심을 찌른다. “그런 걸 배우면 현명한 사람이 되는 거니?” 우리는 지난 백 년간 서구를 따라잡는 데 최선을 다했고 성공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

지난해 한국은 역사상 최저 출산율 0.8을 기록했다고 한다. 세계통화기금 총재였던 라가르드가 몇 년 전 이화여대 강연에서 “한국은 집단 자살 사회”라고 말해서 충격을 주었던 일이 떠오른다.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기까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2006년부터 출산율 제고를 위해 투입한 예산은 300조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이런 결과가 나왔다. 우리 사회를 보는 관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이 지구적 규모의 변화, 근대화에 편입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면서 서구 중심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아시아 최빈국의 가난을 벗어나 10대 경제 대국이 된 것을 두고 기적이라고들 한다. 박수에 속지 말자. 공짜는 없다.

한국 초등학생 학력이 세계 최상위 수준이라고 평가되고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 제도를 극찬했을 때,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놀지 못하고 학원에 가야 하고, 잠이 모자라 학교에서는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부모들은 안다.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사지선다 문제를 반복적으로 푸는 교육이 인성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는 걸 교육자들은 안다.

암기된 지식이 쓸모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한류가 증명하듯이 우리 문화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교육과 사회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너무 늦어지면 안 된다.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