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를 공부하는 외국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한류의 파도다. 내가 영어로 가르치는 한국 문학 강의에 등록한 외국 학생은 대부분 ‘K컬처’에 심취해 있다.

외국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섞인 강의실에서 단골 토론 주제는 한국 문화의 특징 찾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토론은 그다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외국 학생들은 토론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고 한국 학생들은 학교나 미디어에서 얻은 토막 상식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요소가 한국 문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나는 학생들에게 큰 서점 시집 코너에 가보라고 권한다. 서점에 시집 베스트셀러 진열대가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뉴욕이나 파리, 동경, 북경의 큰 서점에 가보면 시집 섹션이 따로 없다. 한구석에 시집이 몇 권 놓여 있지만 대부분 학교에서 가르치는 고전 시집이다.

한국은 시의 공화국이다. 출판 역사에서 시집 밀리언셀러를 여러 권 기록한 나라도 한국뿐이다. 언어 사용자 수에서 수십 배인 영어권에서도 이런 기록은 없다. 시인들이 시를 써서 잡지에 발표해 적은 액수지만 고료를 받고 시집을 출판하면 인세를 받는 일이 정착된 나라도 우리나라뿐이다.

한국이 시 공화국이 된 것은 오래된 인문 전통의 힘도 크지만 사회적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 백년간 한국 사회는 격렬한 변화를 겪으면서 전무후무한 경험을 해왔다. 급격한 환경 변화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자각 밀도를 높인다. 시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이러한 자각에서 나오는 자연스럽고 강렬한 반응 아닐까.

시는 마음에 뜻한 바를 드러내는 말하기의 한 방식이다. 우리는 지난 백년간 현실의 벽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시로 표현해왔다. 최근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이 현실의 벽을 깰 때 거대한 고래와 함께 마음이 솟구치는 것이 좋은 예다. BTS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 “너의 상처는 나의 상처”라며 처지가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되고자 한다. 이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열망을 표현하는 시가 앞으로도 한국이 발전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한류는 인류에게 그런 체험을 알리고 있다.

※9월 일사일언은 이영준 교수를 포함해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 이진준 뉴미디어 아티스트,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