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돌을 넘기기 전, 결핵에 걸려 9년간 독하디독한 약을 밥보다 많이 먹었다. 살아있는 송장처럼 깡마른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와 다를 바 없다. 약한 체력 때문인지 서른여섯 가지 알레르기와 천식을 앓고 있다. 우유, 밀가루, 소고기, 돼지고기, 갑각류 등 거의 모든 음식을 망라하니 의사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사람 몸은 놀라울 정도의 적응력을 지니고 있다. 컨디션을 잘만 관리하면 라면에 삼겹살까지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됐다. 대신 물을 꽤 많이 마셔야 한다. 종종 물 대신 술을 마시는 게 문제지만.

알레르기에 신경 쓰다 보니 까다롭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그리 피곤하게 사느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덕분에 예술가로서 필요한 온갖 예민함을 다 갖췄으니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지독한 알레르기에 시달리며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별일이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런데 그걸 배려해 주지 않으니 서운함이 쌓이고 다툼이 생긴다.

배려와 포용은 한국 사회가 유난히 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분명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했지만 성(性) 소수자와 장애인, 소수 인종과 난민 등 소수가 지닌 다양성을 배려하는 데엔 아직 서툴다. 학교 공부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인류에 대한 공헌과 전 지구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얼마나 가르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까다로움은 모두가 ‘예스’라고 외칠 때 ‘노’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의 속성이기도 하다. 까다로운 시선으로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지금 한류가 보여주는 우리 문화의 경쟁력도 까다로운 사람들 덕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까다로운 취향이 반영된 결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창의적 콘텐츠로 이어졌다고 강조하고 싶다. 박찬욱 감독도 ‘헤어질 결심’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탔을 때 한국 영화의 성공 비결을 묻는 외신 기자에게 “한국 관객들은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다”며 까다로운 한국 관객 덕분이라고 하지 않았나. 까다로움이 힘인 세상이다.

이진준 뉴미디어 아티스트(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