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마음속 구입 목록에 쌓아뒀던 책 두 권을 구입했다. 하나는 ‘모비 딕’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어보’다. 두 권 모두 바다 이야기다. 더운 여름에 바닷물 한번 만져보지 못했기에 자연스레 바다 책 두 권을 들고 시원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요즈음 유행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회를 보다가 곧바로 서점에 접속해 ‘모비 딕’의 구매 버튼을 눌렀다. 자폐 스팩트럼 천재 변호사 우영우를 사로잡은 일관된 모티브가 고래이고, 우영우는 고래에 대한 장황설을 늘어놓으며 ‘모비 딕’을 잠깐 언급한다.

‘모비 딕’은 고래 이야기이자 해양 문학의 고전이다. 수년 전부터 육지에서 해양으로 눈을 돌려 해양사를 공부하는 중인데, 얼마 전 한 해양 관련 학회에서 진행한 해양 고고학에 대한 발표에서 허먼 멜빌(1819~1891)의 자전적 소설 ‘모비 딕’을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가 구매해 읽게 될 줄이야! 일본에서는 ‘흰고래(백경·白鯨)’로 번역됐다.

‘자산어보’ 역시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찜해 둔 영화 ‘자산어보’를 본 직후 바로 구입을 결정했다. 책을 받자마자 고래 항목을 찾아보니 권2에 등장한다. 아쉽게도 내용은 간단하다. 정약전(1758~1816)이 유배돼 자산어보를 집필하던 흑산 앞바다에도 고래가 있었다. “주자(朱子)는 참으로 힘이 세구나”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주자학적 세계관이 독점적이던 시대에 ‘사물’에 대한 관찰과 기록을 남긴 정약전의 선택과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19세기 초 조선의 전도 유망한 젊은이들은 ‘자산어보’의 길보다 ‘목민심서’의 길을 택했지만, 어느새 21세기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는 ‘목민심서’의 길보다 ‘자산어보’의 길을 택하고 있지 않는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비 딕’, 그리고 ‘자산어보’의 눈에 띄는 공통점은 ‘고래’다. 하지만 내 눈엔 ‘몰입’이 보인다. 그러다 문득 ‘모비 딕’에 등장하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이 눈에 들어와 검색해 보니 소름이 돋는다. 더위를 피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곳 커피숍 이름이 바로 소설 속 항해사 이름에서 온 것이었다니!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