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능력자가 내게 ‘이번 여름에 어디로 가고 싶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음... 여러 곳이 떠오른다. 올해 여름 중대한 결정이 내려질 중국 베이다이허(北戴河)는 어떨까? 여름마다 모이는 중국 최고 지도부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가을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정보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어렵다면 열하(熱河)는 어떨까? 열하는 과거 청나라 황제들이 여름마다 피서도 하고 사냥도 즐기는 장소였다. 북방의 외국 수장들을 접견하는 다채로운 이국적 건축물도 볼 수 있고, 몽골어, 티베트어, 한어, 위구르어, 만주어의 5개 국어로 써진 편액도 만날 수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지참하고 갈 것이다. 물론 꼭 여름이어야 한다. 겨울엔 너무 춥기에.

열하도 덥게 느껴진다면 좀 더 북쪽인 내몽골자치구에 있는 몽골제국의 여름 수도인 상도(上都)는 어떨까? 이곳에 도시를 건설했던 쿠빌라이 칸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중국을 정복한 이후에도 여름마다 수도 대도(大都·베이징)을 떠나 상도로 순행했던 몽골 칸들의 이동성(mobility)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상도를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 이 도시를 멋지게 묘사했고, 이를 읽은 유럽인들은 세상 어느 나라보다 판타지로 가득한 몽골의 여름 도시인 상도를 ‘제너두(Xanadu)’라 불렀다. 뜻은 ‘이상향’이다. 이후 영국의 시인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는 몽골 통치자의 여름 궁전인 제너두에 관한 상상 속 이미지를 ‘쿠블라 칸(Kubla Khan)’이라는 시를 지어 노래했다. 콜리지는 상도에 직접 가 보지 못했으나, 병을 치료하려고 아편을 복용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어차피 아무 곳도 못 갈 것이다. 여름방학에 써야 할 글과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다. 그래도 이왕 정신세계에서나마 제너두까지 왔으니, 오랜만에 올리비아 뉴턴 존이 불렀던 ‘제너두’라도 들어봐야겠다. 환상적인 댄스클럽을 배경으로 한 ‘제너두’를 들으며 몽골 초원의 수장들이 모인 초원의 제너두를 떠올리는 것도 괜찮은 피서법이 되지 않을까?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대운하 시대’ 저자

※8월 일사일언은 조영헌 교수를 비롯해 이진준 뉴미디어 아티스트(KAIST 교수), 현혜원 카피라이터 겸 서퍼,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가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