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집에 대한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다. 20여 년 전 음반사 대표로서 해외 아티스트들 의전을 멋있게 수행해 볼 의도로 서울 강남의 한 초호화 한정식집을 찾았다. 하지만 혼자서만 한 점도 채 못 먹고 자리를 일어나야 했다. 요리가 나와 뭘 좀 먹으려던 찰나마다 아티스트로부터 “이건 뭐야?” “이건 뭐로 만들었어?” 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한정식 종류는 어찌 그리도 많은지! 한국 음식 종류와 역사, 그리고 먹는 법에 대한 능숙한 영어 브리핑 실력은 그런 고행(?)으로 터득한 소득이다.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에 앞서 그들의 식성을 정리해둔 케이터링 라이더(catering rider)를 받아볼 때, 채식주의자 표시가 있으면 긴장이 많이 됐다. 특히 밀가루나 탄수화물을 먹지 못하는 글루텐 민감증, 설탕 민감증을 가진 이들을 대할 때는 그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한식 중 의외로 설탕 안 들어가는 음식이 참 드물어서다. 글루텐프리 음식만 찾다가 매끼니 수십만원대의 고깃집 영수증을 끊게 되었던 아찔한 경험도 있다. 아! 요즘은 그래도 세상 좋아졌다. 군데군데 샐러드바가 많이 생겨서.

매운맛에 특화되었다는 한국인의 자부심도 작아진 지 오래다. 미국이나 유럽 대도시 출신 중 이미 김치 맛에 익숙해진 해외 뮤지션도 꽤 된다. 약 1년 한국에 살았던 경험으로 ‘신촌자취생’이란 별명까지 얻은 스웨덴 가수 라세 린드가 대표적이다. “오, 이 김치 제대로 삭았네?”라던 그의 품평은 잊히지 않는다. 그에게 오히려 젓가락질 지적을 받아 낭패를 본 우리 측 한국인 스태프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고기를 먹을 때면 누구나 행복해 했다. 핀란드의 메탈그룹 스트라토바리우스의 기타리스트 마티아스 쿠피아이넨은 꽃등심 양면에 된장을 범벅해 구워먹는 특이한 식성을 가졌다. 싱가포르 버스커들의 아시아투어 관찰카메라를 찍는 방송팀을 담당했을 땐 팀원 각자의 종교에 따라 가리는 음식이 달라 식당 선택에 꽤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해결책은 있었다. 지구상에 닭을 안 먹는 인종은 없으니깐.

음악과 음식은 각각 ‘소리’[音]와 ‘마시다’[飮]의 의미를 가진 ‘음’이라는 한 음절을 공유한다. 그러고 보니 음악인들에게 알맞은 음식을 챙겨주는 일도 음반 기획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도 결국,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