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을 나만큼 하는 서양인 친구에게 ‘서운하다’ 가 영어로 뭔지 물었다. sad, angry, upset. 몇 개의 영단어를 나열하다가 고개를 젓고는 서운함을 표현하는 정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영어권 사람들은 서운하지도 않은가? 비슷한 경우로 ‘답답하다’ 역시 적당한 영어 표현이 없단다. 답답하다는 표현이 없다니 참 답답하겠다. 한국인인 나는 마음껏 서운해하고 답답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특히 젊은 사람들은 그것이 사회적 책무라는 듯 끊임없이 생소한 신조어들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은 유행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폐기되지만, 드물게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우리의 어휘를 더욱 다채롭고 풍부하게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가끔 동년배 친구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무릅쓰고 어디서 주워들은 신상 신조어들을 대화에 종종 활용해보곤 한다.

최근에 자주 사용하는 말은 ‘킹 받는다’는 말이다. ‘열 받는다’는 표현에 ‘King’이 합쳐져서 ‘왕 열 받는다’ 정도로 쓰인다. 하나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자주 활용되는 것 같다. 그저 단순히 열 받고 짜증나는 상황이 아니라, 상호 간에 가까운 관계에서, 상대방의 어떤 반복되는 태도나 습관이, 딱히 타인에게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라 강하게 제지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존중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이해하긴 어려운, 그런 애매모호하지만 일상에서 수없이 느끼는 흔한 상황을 한마디로 ‘킹 받네’ 라고 정리해버리곤 한다.

예를 들어, 한때 오래 자취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는 어느 날, 동네 헬스장에 등록하여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난 후, 식단 관리를 병행한다며 나와 겸상을 거부하고 건강 식단을 정성껏 준비했다. 닭 가슴살, 삶은 계란, 통밀 빵, 견과류, 양상추를 한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서 그걸 ‘king’이란 상호가 붙은 대용량 컵라면과 함께 섭취하는 기이한 식단을 꾸준히 고집했다. 당시엔 그 표현이 없었지만 ‘킹 받는 순간’의 아주 적절한 예시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킹 받게’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킹 받는 순간’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개성을 힘겹게라도 인정하겠다는 긍정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열 받지 말고, 이왕이면 킹 받는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해본다.